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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부산’에 갔다
여행장소 152회 백제기행 - 예술이 되살린 삶의 공간, 부산
작성자 방재현
기행일 2014-03-22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부산’에 갔다


152회 백제기행 - 예술이 되살린 삶의 공간, 부산



새벽 공기를 마시고 길을 나선다. 산 좋고 물 맑은 동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아니다. 대한민국 제1의 항구도시, 부산, 사람들이 북적대며 모여 사는 곳을 찾아간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공간에서 어떠한 꿈을 꾸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증과 함께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했다. 152회 백제기행 중 예술기행 스무번 째, 계획과 준비를 마치고 찾아가는 곳은 또따또가,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감천동 문화마을로 하루 일정이 짜여졌다.


함께 사는 이름, 또따또가


부산에 이르러 맨 먼저 발을 내려놓은 곳은 중구에 위치한 ‘또따또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를 배려(똘레랑스)하며 ‘따’로 활동하지만 ‘또’ 같이 활동하자는 의미의 ‘거리’이다. ‘또따또가’가 위치한 지역은 한때는 부산의 중심지였으나,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들이 신시가지로 이전하게 되면서 사람들도 덩달아 떠나게 되어 한산하고 조용한 느낌을 주는 동네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구획되지 않은 도로와 오래된 건물들이 낡고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사람들이 붐비고 번성하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쓸쓸해져 가는 이곳에 5년 전 가난한 예술가들이 기관의 지원을 받아 창작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주민들과 함께 오래된 건물에 색을 입히고 통행로를 단장하며 다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나게 했다. 거리에서는 때때로 소규모 공연들이 펼쳐지고 화랑에서는 쉬지 않고 전시가 이어진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멀리서도 찾아오게 되면서 거리는 예전과는 다른 느낌의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토요일 오후, 관광객들을 제외하면 거리의 인적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다. 바다를 메워 뭍으로 만든 낮은 지대와 원래부터 육지였던 지대를 연결하는 계단들이 특이하다. 구한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을 견뎌낸 건물들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고풍스런 멋을 간직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오래된 건물들 틈바구니에서 숨어 지내 듯 저마다의 작업장을 가지고 있고 예술가들이 머무르는 건물은 알아보기 쉽게 안내판을 설치해 두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은 시민들에게 일정시간 창작공간을 개방하는 조건으로 무상으로 건물의 일부를 3년 동안 임차할 수 있다고 한다. ‘또따또가’에 입주하는 예술가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가듯 세월을 간직한 공간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잔뜩 풀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이동한 곳은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알려진 ‘국제시장’으로 시장의 분위기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도록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흩어졌다. 좁은 골목길을 두고 양쪽으로 늘어선 상가들과 물건을 고르는 인파들은 여느 재래시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시장의 규모가 커서인지 팔고 있는 품목들이 다양하다. 시장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재래시장 특유의 북적임과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맛 볼 수 없는 돼지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입맛을 돋우었다. 


함께 살린 그곳, 보수동 책방골목



식사를 마친 일행이 약속된 장소에 모두 모이자 보수동 책방골목을 향해 도보로 이동했다. 책방골목은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이면서 학생들이 책을 사고 팔수 있는 노점헌책방들이 줄지어 들어선 것이 연원이 되었고 후에도 부산의 명소로서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다 인터넷과 전자문화의 발달이 이곳에도 위기를 몰고 왔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기관과 민간단체들이 관심과 지원을 쏟아 부었고 골목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했다. 다채로운 이벤트와 행사를 진행하며 책방골목의 건재함을 알리자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잦아지게 된다. 이제는 새 책을 파는 서점도 들어왔고 오래된 고서와 장서를 비치하여 차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카페도 생겼다. 주변의 명소들과 어울려 잠시 쉬어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골목은 관광객으로 보이는 인파들과 끼리끼리 나온 젊은 친구들 외에도 아이를 데리고 책을 보러온 가족들로 넘쳐났다. 행여나 쌓여있는 책 더미 틈에서 좀처럼 구할 수 없는 귀한 서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함께 만들어 나가는, 감천문화마을


커피 한잔과 함께 책방골목을 돌아본 후에는 버스를 타고 사하구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의 마추픽추로 불리는 감천동 문화마을이다. 이미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려져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산자락을 따라 펼쳐지는 정경이 멀리서 온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주택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서 있지만 앞집이 뒷집의 전망을 가리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늘마루’로 불리는 전망대에 이르자 멀리 부산시내와 바다에 인접한 항구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비탈길을 힘들여 올라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을 형성의 주축은 역시 전쟁을 피해 팔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었다. 마을이 한창 번창할 무렵에는 주민수가 3만여 명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만여 명 정도이고 대부분 자식들을 대처로 내보내고 남아 있는 어른들이라고 한다. 마을에 사람들이 떠나면서 마을이 쇠퇴해 가고 있을 무렵인 2009년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문화예술단체와 주민들이 함께하는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었고 마을은 예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골목길과 담장은 조각과 그림들로 가득 채워졌고 집들은 알록달록 저마다의 색깔을 입었다. 마을역사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빈집에는 예술 작품 전시장들이 들어섰다.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음식점과 카페도 만들었고 어르신들이 일할 수 있는 작업장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도시의 미관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밀어붙인 달동네의 철거와 공동주택 재개발 바람은 이곳과는 별천지의 이야기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알리고 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쉴 틈이 없지만 활기로 가득 차 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은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로 넘쳐 났다. 젊은이들에게는 예술작품과 함께하는 이국적 풍경 외에도 지나간 세대가 걸어온 시간의 흔적과 역사의 굴곡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도시재생을 생각하다


사실 부산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다였다. 부산에 가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바다를 대면하고 싶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바다를 볼 기회가 별로 없다고 한다. 항만시설과 군사시설들이 해안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소식은 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근 주민들이 바닷가에 쉽게 나갈 수 있도록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도시의 성장과 발달, 쇠퇴의 과정 속에서 신시가지의 형성은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구시가지의 슬럼화를 진행시켜왔다. 최근 들어 낡고 오래된 거리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사람을 모으려는 노력이 ‘도시재생’이라는 사업 명으로 시작되었다. 자원과 공간의 낭비를 막고 도시의 기능을 회복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빼곡한 고층 건물들과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의례히 모이면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모습을 같이 떠올려보며 돌아가는 여장을 꾸린다. 

방재현 문화저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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