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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건축과 전시, 무용으로 만난 전통과 현대의 조화
여행장소 154회 백제기행 - 사람과 역사, 그리고 그들을 위한 쓰임의 디자인
작성자 방재현
기행일 2014-05-17


건축과 전시, 무용으로 만난 전통과 현대의 조화


154회 백제기행 - 사람과 역사, 그리고 그들을 위한 쓰임의 디자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엔조마리展>, <간송문화展> 
개관기념전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신작공연 ‘이미 아직’



공연과 전시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나선다. 감성을 자극하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줄지 번뜩이는 영감으로 생각의 골을 넓고 깊게 만들어 줄지 예술의 향유는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154회의 백제기행 중, 예술기행 스물 한 번째는 <간송문화전>과 <엔조마리전>을 필두로 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개관기념전과 대학로의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안애순의 신작 <이미아직>으로 밥상이 차려졌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두타, 밀리오레, APM 등 대형 의류도매상가 빌딩들 맞은편에 있던 동대문 운동장을 대신해 세워진 건축물이다. 90년대 이후 동대문운동장이 운동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자 공원화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어왔고 2007년에 이르러 휴식, 녹지, 문화 복합공간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다. 올초 3월 21일 7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대중들 앞에 첫 선을 보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이라크 출신 여성디자이너 자하 하디드가 공모를 통해 설계를 맡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주변의 건물들과는 너무도 상반된 건축물의 등장에 아연실색하다. 마치 우주선을 방불케 하는 외형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건축물의 구조를 갖출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내부로 들어가자 밖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형화되지 않은 곡선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구조물들은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심적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기하학적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다. 자하 하디드는 “자연은 규칙적이지 않지만 그 속에 있으면 편안하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조선시대 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동대문 지역의 끊임없는 에너지와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21세기의 문화적 다양성을 통합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다고 한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외곽을 둘러보고 내부통로를 따라 돌며 순회를 마쳤다. 전체적으로  주변건축물들과는 도드라지지만 그렇다고 모나지는 않았다. 세간의 조심스런 우려에도 아직까지는 하루 평균 3만 여명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돌연한 건축물에 시민들이 익숙해져갈 즈음에는 방문객의 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 많은 비용이 투입된 만큼 지속적인 활용과 효율적인 운영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서울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DDP투어를 마친 일행은 인근에 있는 함흥냉면집으로 이동해 기호에 따라 냉면과 설렁탕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이후 본격적인 전시관 관람이 시작됐다. 먼저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라는 소제로 간송 전형필이 일제 강점기 동안 사재를 털어가며 반출을 막아 낸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책과 그림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국보급 문화재의 실체를 육안으로 볼 수 있지만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특히 국보 68호로 지정되어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려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국보294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국보 70호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담당 보안요원이 상시 주둔할 만큼 경비가 삼엄하다. 가까이 보고 싶은 요량으로 고개를 내밀다보면 어김없이 제재가 가해진다. 국보 135호로 지정된 신윤복의 풍속화첩인 <혜원 전신첩>에는 <월하정인>, <단오풍정>등 익숙한 작품들이 담겨 있는데 색감과 선의 강도 뿐아니라 화폭이 담아내는 표현감을 직접 느낄 수도 있다. 이외에도 도자기류 25점, 서화류 33점 등 총 59점(국보 8점, 보물 3점)의 문화재가 진열되어 있고 전시물은 주기적으로 교체될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장 출입을 위해서는 통합권이 아닌 별도의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 하지만 관람객들은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엔조마리전은 간송문화전 전시장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엔조마리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릴적 가난했던 엔조마리는 일자리를 찾아 밀라노로 갔고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다 순수 독학으로 디자인에 입문하게 된다. 엔조마리는 사용하는 사람들이 쓰기 편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을 디자인하려 했다. 그는 쓰임과 형태를 조화롭게 연결해야 한다는 디자인에 대한 정의와 철학을 가지고 소비를 조장하는 디자인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엔조마리전 유치를 성사시킨 아트디렉터 이상철은 “엔조마리는 유토피아로 가기위해 디자인을 활용합니다. 그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봤어요. 그의 디자인에는 전쟁 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입구에 들어서면 나무로 만든 탁자며 의자가 맨 먼저 눈에 돌어온다. ‘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 함께 나누자는 메시지를 담아 판자와 못 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설계도면이 발표된 지 40년 만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참여로 국내에서 최초로 재현되었다. 설계도면은 원하는 관람자들에게도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이밖에도 만드는 사람을 배려하는 사모스 컬렉션, 아이들을 위해 디자인된 퍼즐 완구, 저렴한 소재로 전통적 우아함을 표현해내는 그의 50년 작업들과 동시대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디자인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나 볼 수 있다. 



주요 전시를 마치고 자유롭게 나머지 전시관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생각보다는 전시장과 공원이 넓은 관계로 제법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디자이너로서의 도전과 혁신을 볼수 있는 <360°>전에서는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곡선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고 <스포츠디자인전>에서는 디자인이 스포츠와 과학, 기술과 융합되었을 때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 <울름디자인전>은 한참 떨어진 별관에서 열리고 있는데 오늘날 디자인 교육의 모태가 된 독일의 울룸 조형대학의 역사와 디자인 방법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자유관람을 마치고 약속된 장소에 모여 다음 공연관람을 위해 대학로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 극장을 향해가다 보니 공원 내에 노래와 율동을 곁들인 거리공연들이 판을 벌이고 있다. 사람들은 원을 그리고 빙 둘러앉아 박수를 치며 공연을 즐기고 있다. 예정된 공연시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멀리서나마 흥겨움을 나누어 본다. 



공연시간이 되었다. 자리는 무대 앞 세 번째줄 가운데, 무대를 올려다보며 무대 전체를 한눈에 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연기자들의 동작 뿐 아니라 표정 까지도 세밀히 읽어내고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명이 꺼지고 적막함이 한참동안 흐른다. 멀리서 풍경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오고 한 줄기 빛이 어딘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1시간 반 가량의 공연이 숨 가쁘게 지나가더니 이내 막을 내렸다. 땀에 젖은 무용수들과 스텝들이 밝은 표정으로 무대 앞에 모두 나와 관객들의 박수에 화답했다. 현대무용은 역시 난해하다.


안애순 예술감독은 상여에 다는 나무인형 ‘꼭두’를 소재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양한 해석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두고 싶었다고 한다. 제의적인 요소가 담겨있다는 프리뷰를 뒤로하고 극중 출연자들은 어디에 눈을 두어야 될지 모를 정도로  제각각 움직인지만 한번 씩은 무대중앙에 서서 자신이 맡은 인물을 표현한다. 그러다 한결같이 허우적대고 발버둥치다 꼬꾸라진다. 서로 싸우다 한쪽이 쓰러지기도 하고 힘에 붙이는 듯 모두 넘어지기도 한다. 서로 부둥켜안으며 화해하고 위로하고 의지하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다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는 격정적으로 절규하다 스산하게 열린문으로 다같이 퇴장한다.



작가는 죽음을 삶과 분리해 일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현대 과학과 기술의 시각에서 죽음과 삶을 한 묶음으로 보았던 한국인의 시선을 되살려보고 싶었다고 전한다. 누군가는 죽음을 빼놓고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했다.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스스로 원해서 세상에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알 수 없는 본연적인 한계상황에 처해있다. 이번 공연은 몽환적인 셰계를 그려온 작가 주재환과 전통가곡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박민희, 프랑스의 조명디자이너 에릭워츠 등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참여했다. 


예술의 향유자들은 새로운 무언가에 쉬지 않고 목말라 한다. 고리타분하고 식상하면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고 소스가 오픈되는 상황은 흥미를 잃어가는 주기를 갈수록 짧아지게 했다. 예술가들은 갈수록 골머리가 아프다. 좋은 공연과 전시를 만나볼 수 있게 해 준 기획팀에게 감사한다.


방재현 문화저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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