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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좁다란 골목마다 이야기가 스며있네
여행장소 161회 백제기행 - 도시문화기행 하나 : 통영
작성자 황재근
기행일 2015-01-24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자본의 흐름에 따라, 시대의 유행에 따라, 행정기관의 정책에 따라 그 중심지를 바꾸며 달라지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을 연상케 한다. 그 변화의 궤적을 따라 도시의 그림자도 생겨난다. 쇠락한 구도심과 낙후된 주거지는 화려한 외관 뒤에 감추고 싶었던 도시의 민낯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현대적 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한 지난 반세기 가량의 세월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유일한 해답은 재개발이었다. 그러나 낡은 것을 부수고 새것을 덧칠하는 방법은 소모적인 순환만을 가져왔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도시를 되살리는 새로운 모델로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낡았다고 흉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오래된 가치를 지키는 방법. 그 안에 깃든 공동체들을 다시 묶어내는 방법. 콘크리트 대신 문화로 새로운 칠을 하는 방법들이다. 크게 성공한 사례도 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른 길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함께 공유할 가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2015년 마당 백제기행은 도시문화기행을 테마로 삼고 그러한 노력들을 찾아가보려 한다.

 

 

도시문화기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통영이다. 남해의 푸른 바다, 섬들이 점점이 떠있는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의 중심에 통영이 위치해있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설치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유적들이 남아있고, 사철 활력이 넘치는 어시장에는 남해 수산물의 집산지로서의 위상이 엿보인다. 지난 20세기 우리 문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문인과 화가, 음악가의 고향이자 예술적 심상이 되기도 한 지역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적 가치, 풍성한 먹거리만으로도 충분히 관광명소가 되고도 남을 자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통영이 주목받는 요소가 또 하나 생겨났다. 바로 지역공동체가 주체가 된 마을만들기다.

124일 청명하게 맑은 토요일 일행은 통영으로 향했다. 이날 기행의 일정은 통영 마을만들기 사업의 대표적 사례인 동피랑 벽화마을과 지난 2013년부터 사업이 시작된 강구안 골목, 서피랑 마을로 이어졌다.

 

철거위기의 주민들, 벽화로 도약하다

유용문 동피랑협동조합 사무장이 동피랑벽화마을과 주민공동체를 소개하는 강사를 맡았다. 유 사무장은 엉뚱해 보이는 옛날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삼년 고개 이야기 아십니까? 넘어지면 삼년밖에 못산다고 하는 고개입니다. 어느 날 마을의 노인 하나가 그 고개에서 넘어진 후에 집에서 앓아누웠습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 저 노인이 앞으로 삼년밖에 못살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때 어린 꼬마 하나가 노인을 찾아가서 해결책이 있다며 그를 끌고 다시 삼년 고개로 갔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한번 더 넘어지라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노인은 역정을 냈지요. 그러자 꼬마가 하는 말이, 한 번 넘어지면 삼년만 산다고 했으니, 두 번 넘어지면 육년이 되고, 세 번 넘어지면 구년이 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노인은 그 고개에서 데굴데굴 구르고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동피랑 마을이 오늘날까지 온 이야기입니다.”

 

 

동피랑은 동쪽 벼랑(피랑)’이란 뜻이다. 통영시는 애초 마을을 철거하고 꼭대기에는 충무공이 설치한 옛 통제영의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은 공원을 조성할 예정이었다. 주민들은 약간의 보상비를 받고 마을을 떠나야 할 처지. 막막한 주민들이 찾은 것은 민관협치기관 푸른통영21이었다. 푸른통영21은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으로 마을을 바꿀 방안을 찾았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벽화공모전이었다. 전문작가 대신 학생과 개인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한 공모전에 18개 팀이 몰려들었고 그 결과는 개성 있는 벽화로 나타났다. 입소문을 통해 관광객이 모여들자 보존여론이 조성됐다. 통영시는 철거방침을 철회하고 꼭대기의 동포루만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삼년밖에 못산다던 노인이 생각의 방향을 바꾼 것만으로 건강과 행복을 되찾았듯이, 동피랑 마을 역시 철거를 앞두고 만들어낸 아이디어를 통해 마을을 지켜낸 것은 물론 부흥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유 사무장은 동피랑 벽화의 특징으로 퀄리티가 높지 않다는 점을 든다. 동피랑마을의 벽화는 2년마다 한 번씩 공모전 형식의 비엔날레를 통해 새단장을 한다. 전문작가 몇 명이 작업한 타 지역의 벽화에 비해 프로와 아마의 구분 없이 참여한 동피랑 벽화는 예술적 가치가 낮을 수도 있다. 그는 대신 벽화마다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설명한다. 어떤 벽화는 반쯤 그리다가 주민들이 의견을 내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기도 하고, 어떤 벽화에는 작가와 가족들이 통영에서 겪었던 추억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미 비슷한 벽화마을들이 전국 곳곳에 생겨난 오늘날, 경쟁을 통해 최고를 추구하는 것보다, 다름을 통해 유일한 가치로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게 유 사무장의 생각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가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주민들의 힘이다. 그리고 그 지속가능성을 판가름 짓는 것은 성과의 분배다. 유 사무장은 사실 관광객들은 힐링을 하고 가겠지만 소음과 낙서,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킬링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마을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동피랑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동피랑점방(기념품 판매장), 동피랑 구판장(식음표 판매장) 등을 운영하며 주민창업 권장해 10여개의 매장이 문을 연 상태다. 이렇게 발생하는 매출은 매월 수도세지원과 분기별 쌀 나눔행사로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아무리 관광지로 성공을 거두어도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상업시설로 도배가 된다면 신선함은 사라지고 지속적인 변화의 동력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동피랑 마을은 외관을 장식하는 것 이상으로 착실하게 내실을 다져가고 있었다.

 

쇠락한 뒷골목에 문화요소를 결합하니

통영 멍게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찾아간 곳은 강구안 골목이었다. 강구안은 통영 구도심을 끼고 있는 호리병 모양의 항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강구안 골목은 그 구도심의 뒷골목을 말한다. 오후 일정의 강사를 맡아준 것은 이색 골목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통영라이더 이승민 씨였다.

 

 

그는 통영의 참 매력은 오래된 골목에 있다고 말한다. 통영이 자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이 거닐던 그 거리,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한 골목이 바로 강구안 골목이다. 과거 통영의 명동이라 불렸던 강구안 골목은 도시 중심의 이전과 함께 쇠락한 구도심이 되고 말았다. 불법주차된 차량들과 방치된 쓰레기로 인해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골목이 된 것이다.

 

 

2013년부터 시작된 강구안푸른골목만들기 사업은 상인과 주민들을 묶어내는 것부터 첫발을 내딛었다. 함께하는 거리 청소부터 가게 앞 화단가꾸기 등 상인들이 직접 참여해 바꿔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골목 변화의 키포인트는 바로 문화요소와의 결합이었다. 과거 유치환, 백석, 윤이상, 이중섭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강구안 골목과 맺었던 인연들을 조형물로 형상화했다. 미술인들이 참여해 윤이상의 달무리, 이중섭의 물고기를 테마로 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상점의 간판들도 재활용 자재를 활용한 미술간판으로 교체됐다.

 

 

달라진 골목은 한눈에도 산뜻해 보였다. 가게마다 독특한 간판들은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게 하는 재미가 있었다. 가게의 이야기를 담은 스토리간판들도 인상적이었다. 주정차 차량이 없으니 걷기에 마음도 몸도 편했다. 통영의 여인을 사랑했던 백석 시인의 시들은 이 거리에서 생겨났을 수많은 낭만적 추억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아픈 과거 위에 색과 글을 입히다

멀지 않은 곳에 서피랑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피랑과 마찬가지로 서피랑도 서쪽 벼랑이란 뜻을 가진 언덕마을이다. 서피랑에는 아픈 과거가 있다. 항구가 번성하던 시기 이곳에는 윤락촌이 형성돼있었다. 현재 그 자리는 모두 철거됐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통영사람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부끄럽다는 인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우고 싶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피랑은 박경리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고 그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 된 지역이기도 하다.

 

 

 

동피랑의 테마가 벽화라면 서피랑은 색과 글을 선택했다. 골목의 담벼락은 따스한 파스텔톤으로 칠해졌고, 곳곳에 박경리 선생의 시가 자리 잡았다. 숨박꼭질 하듯 만나게 되는 크지 않은 조형물들도 마을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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