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마을은 사라져도, 삶은 흐른다
여행장소 166회 백제기행 - 도시문화기행 여섯 : 전주
작성자 황경신
기행일 2015-06-20




형편 탓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곳저곳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다. 친구들과 정들만 하면 떠나야 하는 '전학'이라는 과정이 어린 나이에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지만, 덕분에 단편처럼 남아있는 여러 동네의 기억이 엉켜있다.
하지만 전주의 몇 곳은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으니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야 할 만큼 전주 토박이인 나에게도 전주는 새록새록하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둘러본 전주 서학동에서는 기억을 더듬으며 신작로를 몇 번이나 오갔다. 하얀 시멘트 포장이 빛나던 신작로는 이제 좁아졌고, 친구가 살던 집은 이런저런 포장을 새로 입고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로 변해 있었다.
명절이면 숨을 허덕이며 오르던 큰집이 있던 동네는 여전히 높고 좁았지만, 쏟아질 것 같은 벽에 간판과 그림을 달고 삼삼오오 모인 젊은 여행객들의 인증샷 배경이 된다. 기차소리가 들리고 집집마다 연탄창고 문이 훤하게 열려있던 자만동 역시 곳곳에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들이 눈에 띠었다.



전주를 걷다, 기억의 걸음들
마당의 도시문화기행에서 여섯 번 째로 선택한 도시는 바로 '전주'이다. 사무실에서는 전주 기행을 다른 때 보다 차분히 준비했다. 매일 부대끼며 살고 있는 이 도시, 맘 먹고 걷고 싶은 이들과 마음 편하게 걸어보자 했다.
여느 기행 보다 소수가 참여했지만, 도보기행인데다 주말이면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야 할 만큼 인파를 이루는 한옥마을을 '관통'하려면 딱 적당한 수의 동행이다.
오랜 시간 '전주'를 연구해 온 홍성덕 교수(전주대 역사문화컨텐츠 학부. 문화저널 편집위원)는 "전주를 잘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이 오셨네요. 그래서 오늘 답사는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볼까 합니다"라며 참가자들의 호기심부터 작동 시킨다.

이번 기행의 여정은 전주 한옥마을과 자만마을, 그리고 구도심 거리를 걷는 것으로 짜여졌다.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전주를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를 품고 있는 이 곳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메르스가 한 풀 꺾이고 다시 몰려든 한옥마을 관광객들 사이를 뚫고, 오목대로 난 육교를 건너 '산동네' 자만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공동체 대표를 맡고 있는 권경섭 씨는 "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생적인 공동체 마을로 성장해가는 현실의 어려움을 여러 번 토로했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에 더해, 자치단체의 등장은 관심 보다는 간섭과 방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삶의 터전에 자본의 공간들이 파고 들면서 예상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역시 자만마을 안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걷기도 힘든 오르막 내리막 동네 골목을 돌아나오는 길, '사람 사는 집입니다. 쳐다보지 마세요'라는 녹슨 대문의 종이 한 장과 연탄창고였을 법한 손바닥 만한 공간을 리모델링 중인 국적 모를 이름을 단 가게의 분주함이 동시에 안기는 것은 간단치 않아 보였다.





마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다시 육교를 건너 오목대에 올랐다. 오목대 정자에서 숨을 돌리며 '핫한' 한옥마을의 진짜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아~'를 십 수번은 연발한 듯 하다.
"일제 강점기를 피해 건너온 주민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이라는 것은 틀린 이야기에요. 언제부턴가 전주시를 비롯해서 한옥마을의 역사를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아닙니다. 한옥마을은 전주의 주거지 형성 역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래전부터 주거지역이었습니다."
한옥마을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전주시의 주거지 형성 역사에 비춰 추정이 가능하다. 전주는 전형적인 동고서저 지형으로 이 사이를 전주천이 흐르고 있는데 전주의 서쪽 능선은 능선의 서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구릉지가 연이어 있으며, 도심부 방향은 바로 밑으로 전주천이 흘러가고 있어 경사가 급하다. 이러한 자연지형이 고대 전주의 주거 공간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한옥마을의 경우 후백제 견훤이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 건국시기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주부사(全州府史)』에 의하면 이 일대에서 10세기 이전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성벽의 흔적들이 있었다고 한다. 10세기 무렵 후백제 사람들은 전주의 동쪽 능선을 타고 주거지를 형성, 한옥마을은 바로 이 동쪽 능선이 출발하는 승암산과 기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사이, 발리산(오목대 동쪽 산)으로 남서쪽 구릉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옥마을의 역사는 현재 알려진 것보다 더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역사적 사실관계 보다 더 깊은 의미와 방향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홍 교수는 "그래서 한옥마을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경주나 안동과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옥마을의 형성과 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 한옥마을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답도 함께 나옵니다. 한옥마을은 생활공간으로서 끊임없이 사용되고, 변화돼왔다는 것입니다. 박제화 된 곳이 아닌 살아있는 삶의 공간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한옥마을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하고, 무엇을 보존해야 될 것인지 더 선명하게 보이리라 생각됩니다."라며 조금은 멋쩍고, 조금은 의미 있는 물음을 안겼다.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참가자들 역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바로 잡는 기쁨 보다 많은 생각을 안고 정자를 내려와야 했다.
여전히 꼬치 냄새와 연기가 진동했고, 호객행위를 위한 목소리는 오목대까지 선명하게 들려온다. 오목대에서 바라다 본 한옥마을의 전경은 깨진 그릇을 누가 볼 세라 깔고 앉아 애가 타는 모습, 한옥 지붕 틈새로 '단팥빵' 시식을 알리는 현수막만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한옥마을을 나와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라감영. 옛 도청사의 낡은 건물 입구의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홍 교수가 준비해온 전주의 옛 사진들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감상하다, 어느새 다들 풀썩 주저 앉는다. 시간과 함께 변해온 공간과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 그것은 차림새만 다를 뿐 오늘을 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이 주는 선물이리라. 주로 전주 토박이이거나 전주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고 있는 참가자들에게는 더욱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전주인가요?
전라감영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설명은 객사로 까지 이어지며, 우리는 전주 근대로의 걸음을 시작한다. 차이나거리-웨딩거리-동문거리는 전주의 바로 어제나 다름이 없다. 이 거리들을 알기 위해서는 전주의 최고 번화가였던 '중앙동'을 이해해야 한다. 일본의 상인들은 처음에는 본정통에 자리를 잡았지만 1907년 전주성 성벽이 철거되자 지금의 중앙동 일대로 옮겨 거류지를 만들고 도로를 정비했다. 그리고 그곳을 '다이쇼오마치'라고 불렀는데 옛 서문에서 팔달로를 넘어 동문에 이르는 직선도로 일대가 바로 그곳이다.
지난 7,80년대까지 전주의 중앙동은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금은방과 한복집, 고급 의상실, 다방,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식당은 물론 전신전화국과 아카데미 극장까지 남녀노소 모두의 공간이 집합된 거리였다. 기억으로는, 90년대 후반까지도 학사주점들이 여럿이어서 칸막이 후미진 술자리도 썩 괜찮은 곳이었다.
관공서와 전화국, 은행 등이 이전하고 전주의 도심이 외곽으로 확장되면서 '구도심'이 된 거리는 급격하게 쇠퇴했고, 이후 특화거리 사업 등이 이루어졌지만 전성기는 돌아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젊은 친구들이 작은 가게들을 창업해 문을 열면서 아기자기한 맛이 더해지고 있지만, 사실 난 떼를 입은 일본식 건물이나 이제 장사 보다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노후를 보내는 동네 어르신들의 세탁소, 홈패션 가게, 옵셋 인쇄소가 더 좋다. 변하지 않는 기억과 풍경을 품어내는 도시의 매력 때문이다. 그것은 지속되어지는 소중한 일상임과 동시에 도시를 이어내는 힘이기 때문이다.

중년을 넘긴 전주 사람이라면 직접 본 적 없어도 누구나 다 아는 전주의 랜드마크 '미원탑'(미원 광고선전탑) 이야기를 건네며 동문사거리를 지나 다시 출발지였던 공간 봄에 도착한다.
참았던 빗방울이 굵직하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공간 봄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하며, 오늘 하루 걸음이 내어준 전주의 풍경을 쌓아둔다. 이 도시가 주는 삶의 빛바랜 기억들은 더 아련해지고, 두려움은 잦아든다. 전주의 삶을 훑어보며 크지 않은 도시가 안기는 평온함 덕분이다. '왜 전주 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말이다.




황경신 (마당 편집기획팀장)


목록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