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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구나의 끝에서 만나는 시작, 그 겨울은 따뜻했네
여행장소 172회 백제기행 도시문화기행 열하나: 해남
작성자 황경신
기행일 2016-01-16


겨울의 혹독함이 몰려들기 시작한 한 주 였다. 남쪽이라면 남쪽이라 할 전주의 기온도 떨어지고 있었다. 가야할 길이 슬슬 걱정이 됐지만, 땅 끝의 기운이 우리를 반기리라.

먼 길, 분주한 한 해의 첫 달임에도 올해 첫 백제기행 버스는 만석이다. 좀처럼 나서기 힘든 해남으로 가는 기회와 오랜 만에 동행을 하는 박남준 시인 덕이다. 하동 악양에서 지내는 박남준 시인은 모처럼의 동행을 위해 전날 밤 전주에서 여관 신세를 지고 나오는 길이다.

미황사의 박남준 시인의 동행은 참 알맞다. 본래도 미황사와 인연이 깊은 박 시인은 기행에 앞서 이미 한 차례 절에 다녀온 참이다. 이미 일군의 방문객들과 곧 다시 오겠다는 전갈을 미황사에 두고 왔다.


 

사라져가는 단청의 아름다움도 고스란히, 미황사

3시간 가량을 달려 도착한 해남. 남도의 기운이 따뜻함으로 먼저 전해진다. 유명 사찰 입구에는 어김없이 자리한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 한 곳 없는 미황사 가는 길은 절 만큼이나 정갈하다. 달마산의 미황사는 우리 나라 육지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8(749)에 처음 지었다고 하고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조선 선조 31(1598)에 다시 지었다.

단청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대웅보전은 오히려 단아함이 살아있는 곳이다.

사드락 사드락 절을 둘러본 일행은 이른 점심공양을 했다. 한 겨울인지라 평소보다 방문객이 덜한 덕에 20명이 넘는 기행참가자들의 점심공양이 돌아왔다. 수행을 하고 있는 젊은 보살들 몇몇과 함께 한 소박한 한 끼였다. 사찰의 음식 답게 정갈한 나물들과 들깨가루를 넣어 끓인 구수한 된장국은 이번 기행에 제법 어울리는 한 몫을 했다.

 

박남준 시인이 우리를 가장 먼저 이끈 곳은 미황사의 부도밭. '땅끝 천년 숲 옛 길'을 알리는 푯말을 따라 숲 길을 걸어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이 길 걸음만으로도 우리는 미황사를 제대로 만나고 있다.

미황사 부도밭으로 가는 길은 대웅보전 앞을 가로질러서 오른쪽 숲 속으로 나있다. 부도밭에 앞서 만나는 것은 반쯤 무너진 낮은 돌담과 아담한 대밭이다.

대밭이 끝나는 무렵쯤에는 맑은 물이 넘치는 큰 돌확이 자리하고 있다. 무너진 돌담을 넘으면 곧 부도밭 모두 24기의 부도와 부도비가 잃어버린 절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고 박 시인은 설명한다. 둥글거나 네모지니 몸돌에 지붕돌을 얹은 이곳의 부도들은 모두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18세기 중반을 넘는 것이 없어서, 150년 전 쯤 절이 망했다는 이야기에 신빙성을 더한다.

 

부도마다 새겨진 거북, , , 두꺼비, 연꽃, 도깨비 얼굴, 또 용머리들은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꾸밈이 없다. 절에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밭의 풍경은 미황사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미황사의 대웅전은 단청 없는 단아한 모습으로, 달마산의 기암을 두른 풍경으로 유명하다.

달마산을 뒤로 둔 미황사는 산세와 어우러져 전통건축의 멋을 보여준다. 미황사의 대웅전은 배흘림 기둥의 곡선, 여러 단으로 포개어진 공포, 지붕선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새겨질 만큼 정갈하다. 세월을 그대로 담은 낡은 단청의 색이 미황사에는 더욱 어울린다.

대웅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안팎에 4출목, 3출목씩의 공포를 짜 올린 다포계 건물이다.

절의 곳곳이 품은 이야기와 심상을 말로 풀어내는 박 시인을 따라 대웅전을 들여다보고, 기둥을 쓰다듬어 보며, 한 바퀴 빙 돌아본다. 때마침 지나는 미황사의 주지 금강스님을 만난다.

 



누구와도 차별 없이 차를 나누다

 

교통여건이 좋아진 지금도 사실 이곳은 멀다. 서울에서는 자동차로 6시간, 전주와 부산에서도 4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라 여간해서는 찾아갈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런데도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10만 명을 넘는다. 미황사의 아름다움과 함께 많은 방문객들은 금강스님을 만나러 이곳에 들른다.

주지 스님보다는 그냥 금강스님으로 많이 불린다. 누구를 만나든 차 한 잔으로 친근하게 맞이한다. 미황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원인 중의 하나가 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영향도 있지만 미황사는 제법 알려진 곳이어서 가족이 함께 구경하러 오거나 떼를 지어 온 답사객들이 종종 있다. 그 때 미황사에서 차를 마시고 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미황사에 가면 주지 스님이 공짜로 차를 주고 인생 상담도 해 준다는 소문이 났다.

전주에서 온 일행과 마주한 금강스님은 일일이 차를 내리며 미황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는 사람들 누구와도 차별 없이 차를 나누었다. 물론 일행은 미리 이야기를 놓은 박 시인 덕에 뜻하지 않은 잔잔한 기쁨을 만날 수 있었다.

금강스님은 평소 그런 의미에서 차는 나와 사람들 사이에 길을 놓아준 징검다리 같은 존재라며 한문학당이나 집중수행을 진행할 때 항상 차담시간을 1시간 이상 갖는다고 한다.

 

해남에는 풍경이 가득하다

나희덕 시인의 시 '땅끝'을 빌어 말하자면 '살면서 몇 번은 땅 끝에 서게' 된단다.

그는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했으나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에 서면 이상하게도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땅 끝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그 말은 곧 끝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앞으로는 걸어서 더 나아갈 곳이 없지만 뒤돌아서면 다시금 육지가 된다.

그래서 '여느 땅과 같지만, 그 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곳'이라는 해남군의 홍보문구가 전혀 과장스럽지 않은 이 땅 끝.

 

바다와 산, 마을을 모두 아우른 땅끝 산책로는 사자봉을 중심으로 1~3코스가 있다.

마을을 빠져나와 사자봉을 향하면 모노레일 탑승 표지판이 보인다. 해발 400m의 사자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길로 이어져 있어 모노레일을 타는 게 편하다. 하지만 7분이 소요되는 붐비는 모노레일 안은 땅 끝 마을의 풍경보다는 답답함이 우선이 될 수도 있다.

땅끝 전망대에서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길을 한참 내려서면 비로소 땅끝탑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이 이곳에 와서 사자봉을 솟게 하고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형세다. 사자봉 아래 갈두마을은 땅끝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해발 156.2m의 사자봉 정상에 세워진 땅끝마을 전망대와 땅끝에 관련된 시들을 모아 다양한 시비를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어 들러볼 만하다.

 

역동적으로 타오르는 횃불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40m 높이의 땅끝 전망대에 오르면 흑일도, 백일도, 보길도, 노화도 등 섬과 바다가 조화된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이 날은 옅은 안개로 가뭇가뭇한 보길도만이 겨우 눈에 들어왔지만, 자욱한 안개 속 바다와 이름 모를 섬들은 더욱 설렘이 되기도 한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 매년 해넘이, 해맞이축제가 열리기도 하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나와 조선시대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갈두산 봉수대를 둘러보고 500여 미터를 내려가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삼각형의 땅끝 탑을 만날 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시가 한반도 땅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저 마다의 마음을 대변할지도 모르겠다.

 

<박스>

 

미황사와 땅끝 마을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미황사는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루에 딱 4번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전부다. 땅끝마을은 마찬가지로 터미널에서 직행버스와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하루에 14차례가 오가니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먹을거리

계절별로 싱싱한 활어를 맛볼 수 있으며 대흥사 길목에는 산채를 위주로 한 음식을 하는 식당들이 많이 있다. 해남 시내에도 떡갈비 등 한정식 맛집이 여럿이고, 농산물직판장을 찾는다면 유명한 해남고구마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미황사에 간다면 붐비지 않은 날은 절밥 공양도 가능하다. 저마다 정성을 보이면 된다. 혹 단체로 갈 경우 미황사 사무소에 미리 문의를 해 가능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절 안에 있는 달마선단원에서도 식사가 가능하다. 연잎밥 8천원, 삼색떡국 7천원, 단팥죽 6천원.

 

땅끝 전망대

땅끝 전망대까지 오르는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30분까지 15분 간격으로 다닌다. 레일길이는 395m, 소요시간은 7분이다. 걸어서 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트래킹도 좋다

미황사 - 부도밭(왕복 15~20) : 가장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 경사가 거의 없어 편안하다.

미황사 - 달마산 정상(왕복 1시간 30): 1.4km밖에는 안되지만 경사가 꽤나 급하다. 가끔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하는 구간도 있지만 장상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과 다도해의 전경이 일품이다.

미황사 - 도솔암(왕복 3시간) : 이구간은 땅끝마을까지 이어진 '땅끝천년숲옛길'의 일부로 경사가 거의 없이 완만하게 이어진 길이라 힘들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미황사 - 달마산 정상 - 달마산 능선 - 도솔암 - 땅끝천년숲옛길 - 미황사(종주코스, 6시간) : 이 구간은 등상복과 등산화, 물과 비상식량 등을 준비해야 한다. 능선을 따라 도솔암에 가까워질수록 바위는 줄어들지만 풀들이 많아 복장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좋다.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곳

대흥사 : 두륜산 품 안에 있다. 서산대사가 '만세토록 빛나는 길지'라 칭송했을 만큼 터가 좋다. 입구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십 리 숲길도 아름답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신록이 우거져 걷는 맛이 좋다. 가는 길에는 지금도 장작불로 구들을 데워주는 유선여관과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도밭이 있다. 대흥사에서 차의 성지로 알려진 일지암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녹우당 : 조선시대 가사문하의 절정을 장식한 고산 윤선두가 나고 자란 곳이자 해남 윤씨의 종택이다. 99칸에 이르는 가옥이 남도 세도가의 위세를 짐작케 한다. 종택 곁에는 고산의 유물,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제 윤두서의 화집, 해남 윤씨의 가보로 물려내려온 보물들이 소장된 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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