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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여행장소 제148회 백제기행 - 세상을 향한 세 가지 시선 : 국립현대미술관 및 예술의 전당
작성자 민슬기
기행일 2013-11-23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148회 백제기행 - 세상을 향한 세 가지 시선

 

─그림일기 : 정기용 아카이브 展

─마리오 테스티노 : 은밀한 시선 展

─공연 '해외 안무가 신작 - 증발'

 

 

11월은 괜한 허기가 지는 달이다. 가을은 멀어지고 있으나 아직 명확한 겨울은 아닌 시기. 달력을 한 장 남겨둔 지금, 우리 안의 공허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 결정하는 일
추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청명한 날씨도, 미술관까지 가는 산책로도 늦가을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국립현대미술관’ 제 5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는 <그림일기 :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전과 마주한다. 어찌보면 한 개인의 작업에 관한 전시인데 생각보다도 방대한 규모에 한 번놀라고, 정기용 선생의 사상과 흔들림 없이 걸어온 길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만드는 전시다. 기용건축의 김병옥 소장은 정기용 선생에 대해 농반진반으로 ‘스케치가 너무나도 방대해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정기용선생의 건축에 대한 꼼꼼하고 치밀한성격, 그 열정과 더불어 이 전시의 규모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대목이다.정기용 선생의 스케치, 드로잉은 물론 도면에까지 많은 전시물에는 메모가 빼곡하다. 알 수 없는 기호로 가득 찬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건축가들의 도면이라면, 정기용 선생은 도면화 시키는 과정에서 메모를 통해 건축가가 아닌 이들과도 소통을 시도했고, 메모까지 도면의 일부로 보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총체적으로건축을 실현하려 하셨던 분인 듯 보였다.
이번 기행에 오기 전 읽었던 정기용 선생의 글 중 특히나 인상 깊었던부분을 잠깐 소개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 결정해야 하는 압박감이 건축가에게는 아주 큰 고민”이라는 대목이다. 즉, “건축가가 하는일은 건물을 설계하기 이전에 과거와 현재·미래를 횡단하며 여러 가지를 사유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땅과시대와 세상과 관습과 싸우기도 해야하며, 모든 기술적·경제적 요인을결합하는 능력도 발휘해야 하는 총체적 작업인데 사회는 아직도 건축가를 집 그리는 사람쯤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나 역시도 머리로는 건축이 총체적인 작업이라고생각하면서도 ‘건축가=설계자’의 도식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보는 것도 건축이다”라는 김병옥 소장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건물의 실제주인은 어떤 개인일지라도 건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지나다니는 사람들 역시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용 선생은 건축을 할 때 항상 주변과 어떤 맥락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했고, 하나의 건축을 위해 상상되는 모든 형태의 것들을 구상하여 이 건축으로 인해 주변이 어떻게 달라질까를 항상 생각했다고 한다. 그를 두고 소통의 건축가, 감응의 건축가라 칭하는 것이 좀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그의 건축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도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겠는가. 정기용 선생이 내 삶의 태도에 대해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남다른 시선
정기용 선생과의 농밀한 만남을 뒤로하고 세계적인 패션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의 사진전이 기다리고 있는 ‘예술의전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한쪽 벽면을 덮은 마리오 테스티노의 메인 이미지가 시선을 끈다. 형광핑크색 후드 자켓을 입은 금발의 검은 여인, 레이디가가. 이 사진을 보고 단번에 레이디가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마리오 테스티노는 그의 피사체가 된 인물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남다른 시선으로 피사체를 포착해낼 줄 아는 세계적인 패션 사진작가다. 전시장 안은 조금 전에 들렀던 정기용 선생의 전시장과 사뭇 다르다. 수많은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이 한 방에 모여 서는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은밀하게 풀어놓는다. 작가와 그들의 은밀한 시선을 읽어 내려가는 일이 즐겁기도 때때로 내가 수줍기도 하다. 전시는 셀러브리티들의 인물사진, 패션사진, 영국 왕실의 초상으로 크게나뉘는데 무엇보다 故 다이애나 비의사진에 눈길이 간다. 물론 그녀의 수려한 외모와 이제는 더 이상 현실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한 몫 했겠지만, 왕실이 가진 근엄함을 벗어던진 채 옆에 가서 이야기를 나눌 수있을 것만 같은 친구 같은 모습이 좋다. 마리오 테스티노는 사진을 통해나를 특별한 곳으로 이끌고, 사람에대해 ‘발견’하게 만들었다. 이번 기행제목 ‘세상을 향한 세 가지 시선’ 덕분인지 오늘 하루 변화무쌍한 ‘시선’을 경험 중이다.

 

과거를 곱씹고 미래만을 기다리는 인간의 모습
어느새 예술의전당은 노을빛으로물들고 쏜살같이 흐른 하루는 이제마지막 프로그램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증발’,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공연이다. 올 봄에보았던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해외안무가 초청작이자 현대인의 공허라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무용으로 어떻게 구현해 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커튼이 열리기를기다리는 시간, 이 설렘이 좋다. 막이오르고 기다리던 공연이 시작된다.무용 같기도, 대사가 있어서 연극 같기도, 행위예술 같기도 한 현대무용이 펼쳐졌다. 미래를 보는 젊은 스님, 기다림의 아이콘 등의 이름을 가진 9명의 남녀 무용수들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나타나서는 몸짓이 아닌 말로 자기소개를 한다. 그들은 곧 무대에서 조각상을 깨뜨리고, 미역과 다시마를 둘둘 감은 몸을 마구 내동댕이쳤다가 그 다시마를 물어뜯고, 욕설을 내뱉는다. 무대 위의 아홉 무용수들은 무언가 단절된 듯한 행동을 하기도, 다소 난해한 면이 있어 춤으로 보이지 않는 춤으로 관객들을 실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객석에 앉아 혼돈의 한 시간을 보냈었는지 모른다. 너무 강렬하기도, 과격하기도우스꽝스럽기도 했던 무대. 커튼콜에 객석에서 무대로 달려 나와 절을 하던 이스라엘 안무가는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과거를 곱씹고 미래만을 기다리는 인간의 모습을 풀어내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인간의 모습을 조롱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보여주려고 했다. 내가 보낸 60분이라는 혼돈의 시간은 생각보다 무거웠던 표현 방식의 낯섦에 대한 무게와 벌거벗겨진 우리 모습을 본 불편함이 아니었을까.

다시 돌아온 일상으로의 나
어둠이 짙게 내린 예술의전당을 나서서 이른 아침 전주를 떠났던 버스에 다시 오른다. 돌아가는 길, 우리는 출발할 때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또 한편에서는 아침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집을 향하고 있었다. 전주로 돌아가 이루어질 일상과의 조우. 별다른 인식 없이 내가 존재하는 지점에 불과하던 생활공간을 이제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라보게 된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있어서 나는 어디에 있는 자인가는 나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내용이 될 것이다. 건축가 정기용식으로 보면 나의 생활공간은 공간이면서 동시에 시간이 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 나와 또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 속에 들어가 살고 있는 사람이 되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지금 두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 안에서 나는 또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관계에 의해,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의 시선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 각기 다른 나 역시 모두 내가 아니겠는가. 그동안 나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현재에 또 얼마나 소홀했던가를 생각해본다. 이를 반성하기에 앞서 내가 할 일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바라보는 일일 터, 건축과 사진 그리고 몸짓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을 경험한 오늘, 나는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민슬기 마당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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