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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라인의 기도를 보다
여행장소 147회 백제기행 - 지붕없는 박물관, 경주 남산
작성자 윤성희
기행일 2013-10-19

신라인의 기도를 보다

 

147회 백제기행 - 지붕없는 박물관, 경주 남산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절로 나오는 장소가 있다. 4시간의 산행동안 발에 차이는 것은 부처, 부처, 부처였다. 험 한 산세와 아랑곳하지 않고 어른 크기의 3배쯤 되는 부처상이 나올 때마다 신을 믿지 않는 이들도 신을 떠오르게 하는 그곳. 경주 남산이다. 1박 2일로 남산을 둘러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을 뒤로 하고 가을이 익어가던 10월 26, 27일 <백제기행>이 경주 남산을 찾았다. 신라인이 신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남산에 새겨 넣었다면 조법종 우석대 교수님은 신화와 역사를 넘나드는 해설로 기행 참가자들의 마음에 남산을 새겨넣었다.

 

걱정하지 마, 다 들어줄게
시작은 남산 초입의 배리 삼존불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깨달음을 위해 부처(교리)마저 죽여라’라는 불교 표현이 있어 당연히 부처는 그 무엇에도 의존, 협력하지 않고 혼자 다닐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본 부처상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삼존이 모두 부처인 줄 알았더니 부처의 양옆의 상들은 부처상이 아니라 보살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부처의 설법을 일반사람들에게 전달해 부처를 보필한다는 것이렷다. 그보살 중 ‘자비의 부처’로 불리는 관음보살은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관음보살만 왼손에 보병을 쥐어 이를 이용해 중생의 고통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이후삼존불이 나올 때면 보병을 쥔 관음보살을 쉬 찾아낼 수 있었다. 조 교수님의 해설이 빛을 발하는 찰라였다. 이후 “자 여기서 관음보살이 누구죠?”라고 물으면 세 살난 어린애처럼 폴짝이며 보병을 쥔 보살을 가리켰다. 그렇게 무지를 깨우쳐 주는 조 교수님의 해설에 점차 빠져 들어갔다. ‘부처가 두 손을 모두 펴 왼손은 아래로 오른손은 위로 올리는데 여기엔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른손을 펴 가슴께에 두는 것은 ‘걱정하지 마’라는 뜻 그리고 왼손을 펴 배 둘레에 편안히 둔 것은 ‘다 들어줄게’라는 뜻이라 한다. 결국 부처란 자신을 열어 우리들의 희노애락을 나누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이 마음의 병에 걸리는 경우는 종국에는 자신의 삶을 나누지 못해서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과도 삶을 나누지 못하는 극한의 분리랄까. 분절된 인간, 파편화된 인간이라고 현대인을 표현하지만 실상은 신과 끊어진 인간, 자연과 분리된 인간이라고 해석해야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자신의 근원과 단절된 인간을 아플 것이다. 사회병리현상도 근원적으로 단절된 인간, 아픈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거란 생각에 부처의 평온한 얼굴이 사뭇 부러워졌다. 부처는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자연 그리고 신으로 표현되는 신성과 연결된 자가 아닐까 하는 불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하며 배리 삼존불을 바라본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온한 부처의 모습을 보며, 그를 바라보는 순간이나마 위안을 얻고 있는 우리들 모습이 겹쳐진다.

기도는 폭력이 아닌 조화로 이뤄진다
남산에 신라인이 새긴 것은 불교문화재가 아니라 간절한 기도였다. 그리고 기도가 이뤄지기 위한 전제 또한 놓치고 있지 않다. 아힘사 즉 비폭력과 조화가 그것이다. 남산이 남산일 수 있는 것은 산 속 곳곳에 부처가 암각으로 새겨져 있거나 진기한 방식으로 석탑이 세워져서가 아니다. 인간이 일부러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의 자연스러움. 그것이 남산의 힘이다. 누구의 무덤인지 추정을 할 뿐, 파보지 않는세 개의 무덤(삼릉)을 시작으로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의 마애관음입상, 커다란 바위 그 자체에서 부처가 성큼 나오는 듯한 마애여래대좌불, 수행하는 대현스님이 기도하면서 불상을돌면 불상 또한 고개를 함께 돌렸다는 삼륜대좌불, 김시습이 머물며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용장사지까지 왕릉 13기,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등 672점의 불교유적이 남산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산 그자체가 유적을 위해 서 있지 않다. 산은 산이다. 편편한 바위가 있으면 불상을 새기고 반반한 터가 있으면 절을 세우고 또 높은 봉이 있으면 탑을 세운다. 이 모든 과정에 인위적으로 자르고 터를 만드는 과정이 없다. 비록 바위 속에 부처가 있다고 믿어도 불상을 새기기 적절치 않으면 그저 예배하였으며 절을 세워도 산을 깎고 계곡을 메워 산의 숨통을 막거나 비튼흔적이 없다 한다. 산과 불교유적이 공존하며조화를 이루는 셈이다. 곳곳에 보이는 자연 동굴에서 스님들이 수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조화의 힘’이 있기에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산 그 고유의 순수를 침범당하지않으면서 부처를 표현해내는 신라인의 간절한 염원까지도 받아들인 것이다. 자연과 예술이 조화, 자연과 신의 조화를 이뤄내 산 자체가 보물이 되었다. 보물의 품에 안긴 인간이 치유되고 보물을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신성한 힘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무당들이 모여든다는 설명에 자연히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기도의 경지가 신에 다다르면 인간은 결국 자연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생각을 하며 ‘아주 오랜만에 땀을 흘리며’ 산을 탔다. 그동안 편안히 산을 오르내리도록 사람들이 계단을 만들어놓곤 했다. 그러나 남산엔 계단이 없다.그저 바위와 나무 그리고 간혹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로프가 있을 뿐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오랜만에 1박 2일 여행을 하다 보니 함께 한 일행들과 친분이 생겼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가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밤’에 이뤄지듯이 이번여행도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잡아타고 인공 조명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다는 안압지로 놀러갔다. 그날 밤의 내 기억은 오롯이 택시아저씨뿐이다. 경주에 산다는 자부심, 한 10~15분 정도의 시간 동안 경주의 신화와 그에 따른유적에 대해 쉼없이 말하는 열정이 택시 안에 있던 우리들 모두에게 전이되었다.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고 내릴 때는 은근히 아저씨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우리들이었다. 그런데 웬걸. “아까 아저씨가 하신 말씀 잘 이해가 안된 부분이 있어요.” “응? 나도” “엇, 나도” 아, 모두 사투리 해석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이해한 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의 열정과 자부심의 연설을 차마 막고서질문하지 못한 우리들은 그날 아저씨가 설명해준 경주 신화의 1/3정도만 ‘알아들었다.’ 아쉽다. 아쉽다. 하지만 역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저 듣고 있을 것이다. 신라인은 아니지만 경주인으로서 그 지역의 문화, 생명, 신들이 살아 숨 쉬는 신화를 말하는 그의 열정 그 자체를느끼는 것이 더욱 즐거웠으므로.

병든 닭도 일어나게 하는 경주
다음 날 남산이 아닌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를 찾아 경주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것은 어쩌면 전날 밤 만난 경주인의 열정에 감화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잠에 취해 버스 안에서 병든 닭처럼 졸았지만 이상하게 버스만나서면 경주의 기운에 취해 기꺼이 유적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포즈걸’이 되었던 것도 분명택시 아저씨 덕이다. 경주를 1박 2일동안 돌아보려한 만행은 분명 만행이었다. 다음번엔 2주간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택시 아저씨의 사투리도 해석해 가면서 경주를 만나봐야겠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이 타게 하는 게 있다면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만나고픈 존재가있다. 경주가 나를 목마르고 그립게 한다. <백제기행>이 후속으로 이 타는 목마름과 그리움을 채워주지 못할 테니 스스로를 도우는 수밖에.

윤성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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