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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절하고 소통하는, 내려놓고 채우는
여행장소 146회 백제기행 - 예술과 자연, 공존의 방식 : 원주 한솔뮤지엄
작성자 황재근
기행일 2013-09-13

단절하고 소통하는, 내려놓고 채우는

 

146회 백제기행 - 예술과 자연, 공존의 방식 : 원주 한솔뮤지엄

지난 9월 14일, 제법 굵직하게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일단의 사람들이 전주종합경기장에 모였다. ‘제146회 백제기행-예술기행 열일곱’ 참가자들이다. ‘예술과 자연, 공존의 방식’을 주제로 한 이번 기행의 목적지는 지난 5월 강원도 원주에 문을 연 한솔뮤지엄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고속도로를 지나, 원주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문막읍에 위치한 한솔뮤지엄을 향해 버스를 달렸다. 좁다란 시골길과 공사가 한창인 원주혁신도시 현장을 지나,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40분을 더 가야 한솔뮤지엄에 닿을 수 있다. 도저히 교통이 편리하다고 는 말할 수 없는 장소다. 가는 길에 한눈을 판 탓일지, 큼지막한 표지판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알 만한 사람, 올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서 찾아온다는 자신감일까? 다행히 원주에 들어서며 빗줄기가 그쳤다. 산자락에 걸친 구름조각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한솔뮤지엄이 위치한 오크밸리 내에 들어선 후, 경사가 제법 되는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자, 성과 같은 자연석 담장이 ‘갑자기’ 나타났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
서울 남산보다 높은 해발 275m의 고지, 대지면적 7만1172㎡, 전시공간 5445㎡, 관람거리 2.3km의 한솔뮤지엄은 국내 최대의 전원형 미술관이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웰컴센터와 전시공간이 마련된 본관과 제임스 터렐관, 그리고 그 자체로 작품인,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스톤가든으로 구성돼있다.
이 미술관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건축의 거장 안도 타다오의 작품이란 점 때문이다. 안도 타다오는 프로복서에서 독학으로 건축가가 된 드라마틱한 이력의 소유자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복싱에 몸을 담았던 그는 현실의 벽을 느끼고 새로운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공업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인테리어 일을 시작하며, 틈나는 대로 여행을 통해 건축을 독학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축가는 근대 건축운동의 기능주의와 대담한 표현주의를 결합한 국제주의 건축의 제1세대 르 꼬르뷔지에. 그에게 직접 사사한 것도 아니다. 그에 관한 중고책을 얻은 후 책속의 그림을 베끼며 건축을 공부한 것이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다. 물과 빛, 바람과 나무, 하늘은 그의 건축물과 긴밀하게 결합된다.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는 그가 가장 즐겨 쓰는 소재다.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차갑지 않고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형태를 갖는다는 것도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의 특징이다. 그의 건축적 특징은 한솔뮤지엄이 지향하는 ‘힐링’ 미술관의 테마와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때문에 그를 초빙하는 것이 뮤지엄 건립을 위한 최우선 과제였다. 2005년 11월 건축 예정 부지를 찾은 안도 타다오는 무엇보다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에 반해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2007년 6월 기본 설계가 완료됐고, 2008년 7월에 착공해 2013년 5월 뮤지엄을 개관했다.
한솔뮤지엄에는 안도 타다오 특유의 색깔과 함께 또 하나의 컨셉이 숨겨져 있다. 바로 ‘소통을 위한 단절’이라는 한솔뮤지엄만의 테마다. 전원에서의 치유를 지향하는 한솔뮤지엄에 들어설 때는 익숙한 도시에서의 일상은 잊으라는 뜻이다. 강원도의 산중이라는 위치, 복잡하고 구불구불한 도로 모두 단절을 위한 과정이다. 이는 건축에도 적용이 된다. 일단 고지이기 때문에 밑에서 올라가는 길에서는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더 가까이 올라서면 자연석으로 쌓은 높은 담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담장 안으로 들어서야 비로소 웰컴센터를 마주볼 수 있다. 플라워가든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본관은 웰컴센터보다 저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자작나무 숲과 자연석 담장에 가려져있다. 멀리서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건물이 담장을 돌아서자 갑자기 나타날 때, 그 순간의 감동이 극대화된다. 경치를 숨겼다 내보이는 ‘장경기법’이다. 이런 ‘숨김’은 다음 장소를 보기까지 적당한 긴장과 설레임을 제공한다.

또 하나의 ‘단절’은 바로 한솔뮤지엄 위치 그 자체다. 고지에 위치한 한솔뮤지엄 그 어디에서나 주변을 둘러싼 산자락을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대신 산 밑의 풍경은 가파른 끝자락에 다가설 때까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덕분에 한솔뮤지엄은 마치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신선의 땅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자연의 고저차를 그대로 살린 안도 타다오의 설계 덕분이다. 그는 인위적인 평탄화를 최소화하고 지형의 높낮이 그대로 건물을 ‘얹었다’. 덕분에 한솔뮤지엄의 스카이라인은 그 어디를 둘러봐도 건물에 가려지지 않는다.

‘무엇을’만큼 중요한 ‘어떻게’
한솔뮤지엄의 본관은 마치 거울같이 잔잔한 워터가든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시공간은 종이의 역사와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페이퍼갤러리와 한국근현대미술작품이 전시된 청조갤러리로 구성된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기능이 합쳐진 복합공간이다. 건물 외관은 담과 마찬가지로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벽이다. 안도 타다오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노출 콘크리트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야 찾아볼 수 있다. 본관 안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만나는 공간은 바로 복도다. 한쪽은 자연석, 한쪽은 노출콘크리트로 이뤄진 복도는 관람동선을 따라 쭉 이어진다. 비정형의 기하학 형태로 늘어선 본관 공간을 따라 복도가 또 하나의 선을 그려간다. “안도 타다오는 복도를 단순히 이동 통로가 아니라 사색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것이 뮤지엄 측 설명이다. 자연석 외벽 쪽으로 열린 유리창을 통해서는 자연광과 함께 건물을 둘러싼 물의 정원이 시야에 들어와 자연과의 일체감을 더욱 키워준다. 건물 밖으로 열린 창은 많지만, 전시공간 내부는 문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철저히 가려져있다. 공간에 비해 넓지도 높지도 않은 문을 들어서야만 작품들이 나타난다. 이 역시 ‘숨김’의 미학이다.
페이퍼갤러리는 제지업으로 시작한 한솔그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종이의 발명과 전파, 그리고 현대의 제지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전시품의 숫자는 많지 않고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화려한 유물도 없다. 인상적인 것은 전시물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적절한 공간배치와 첨단 미디어를 활용한 전시기법은 밋밋할 수도 있는 관람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무엇을 보여주느냐’만큼이나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청조갤러리는 국내 여성아트컬렉터 1호로 꼽히는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기증한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이다. 청조는 이고문의 호이기도 하다. 이고문이 40여년간 수집한 작품은 총 300여점. 그 중 한국 근현대화가들의 작품 100여점이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백남준,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이우환 등 문외한들도 그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거장들의 작품이 다양하게 전시돼있다.
본관을 나오면 신라 고분에서 모티브를 얻은 스톤가든을 마주한다. 돌 언덕 사이에 배치된 조각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 끝에 뮤지엄의 마지막 공간인 제임스 터렐관이 자리잡고 있다. 제임스 터렐관은 한솔뮤지엄 전체에서 유일하게 안도 타다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빛의마술사’로 불리는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특정 공간을 빛으로 가득 채워 관객들에게 시각적, 지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필연적으로 그의 작품은 건축물의 설계부터 시작된다. 한솔뮤지엄에 전시된 그의 작품은 모두‘겐지스필드’, ‘웨지워크’, ‘호라이즌’, ‘스카이스페이스’까지 모두 네 점이다. 제임스 터렐은 완성된 전시관을 보고 “내 작품을 보여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 평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작품을 유치한 것은 한솔문화재단의 결정이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과 소유하고 있는 컬렉션만으로도충분히 뮤지엄을 꾸밀 수 있었지만 ‘힐링’이라는 테마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명상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추가한 것이다. 감상보다는 체험에 가까운 그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국내에서는 하기 힘든 경험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그가 보여주는 빛의 마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간 익숙했던 빛과 공간에 대한 지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
한솔뮤지엄은 한번 둘러봤다 해서 관람이 끝나는 공간이 아니다. 전시 작품들을 후다닥보고 야외의 정원에서 하늘을 올려다봐도 좋고, 건축에 관심이 많다면 이쪽저쪽에서 건물을 살펴봐도 좋다. 작품감상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싶다면 전시공간 뿐 아니라 복도와 야외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작품들을 찾아다녀도 좋다.
어떤 방식이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시간을 충분이 들이길 권한다. 전시품 뿐만 아니라 건축물,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자연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솔뮤지엄은 개관전시를 마친 후 내년에는 한국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준비 중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기획전시관도 그 즈음 만나볼수 있다. 교육과 체험프로그램도 본격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그 때 쯤엔 색색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을 또 다른 풍광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녀왔지만 가보지 않은 곳처럼, 다시 찾을 날이 기다려진다.

황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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