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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밤 하늘의 북두칠성과 호수 위의 오페라 무대가 준 감동
여행장소 144회 백제기행 - 유럽의 여름은 축제다
작성자 김홍연
기행일 2013-07-27

밤 하늘의 북두칠성과 호수 위의 오페라 무대가 준 감동

 

144회 백제기행 - 유럽의 여름은 축제다

사실 이번 ‘마당’의 유럽기행은 나에겐 무리였다. 건강도, 그에 따른 체력도, 일정도, 여건도, 그 어느 것 하나 “갈 수 있다” 보다는 “갈수 없다”에 기울어진 상황 이었으니까.
하지만 6월초 “유럽 기행 가자”는 제안을 듣자마자 아무 망설임 없이 “가고 싶다”고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모든 상황을 “갈수 있다” 쪽으로 바꾸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더구나 이번 기행을 아들과 ‘꼭 같이 하고 싶다’는 내 말도 안 되는 바람은 아들에게까지 큰 부담을 안겼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막대한 양의 업무를 미리 해결하고 덤으로 회사 상사들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무릅써야 했던 아들의 고충까지도 외면했다. 그만큼 꼭 가고 싶었던 기행이었다.
7월 28일부터 8월 6일까지의 일정은 길다면 긴 여정이었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행복했으며 하루 하루의 일정이 내게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마당’에서 기획한 알차고 좋은 내용의 해외 기행에 여러번 참가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매번 놓쳐야 했던 아쉬움이 이번 기행으로 모두 덜어진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번 ‘유럽기행’은 내 스스로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확신을 주기에 족했다.
유례없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던 터라, 서늘한 유럽의 여름을 기대하며 도착한 유럽. 그러나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유럽도 우리와 똑같이 폭염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길가의 아이스크림 판매대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계속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햇빛과 지열이 괴롭혔다. 그런데 행운은 따로 있었다. 날씨 변화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마치 약속이나 된듯이 적당한 비와 햇빛이 들고나면서 우리 일정을 잘 진행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마당의 기행은 하늘이 도와서(?) 늘 날씨 덕을 본단다. 이번 유럽기행에서도 마당의 날씨 복은 비켜가지 않았던 것 같다.

넓은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환타지의 세계
이번 유럽기행의 테마는 축제였다. 그중에서도 이번기행에서는 오페라 축제에 주제를 두었다. 평상시에는 접하기 힘든 브레겐츠의 오페라 페스티벌과 장크트마르가르텐의 오페라 페스티벌을 참석하는 여정은 그 덕분이었다. 게다가 인스부르크에선 여름 시즌을 겨냥해서 열리는 ‘가장 행진 축제’도 경험할 수 있었으니 덤으로 안겨진 축제까지 치자면 우리 일행은 오스트리아의 축제세례를 받은 셈이다.

 
두 곳의 오페라 축제는 일반 오페라 극장이 아닌, 호수와 채석장을 공연 무대로 사용하는, 발상의 전환을 느끼게 하는 특색 있는 축제다. 긴 역사를 갖고 있거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명성을 누리고 있는 유명한 축제들이다.
올해 브레겐츠에서는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를, 장크트마르가르텐에서는 푸치니의 “라보엠”을 공연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브레겐츠의 공연이 더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보덴호수를 배경으로, 마치 동화 속 나라처럼 만들어진 무대에서 매순간 상상력의 극치인 무대 연출에 감탄을 하며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그 시간 여행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밤 아홉시가 넘어서 시작하는 오페라는 진한 남색의 하늘과 멀리서 반짝이는 마을의 불빛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조명과 무대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물위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 저렇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해낼까’하는 감탄과 더불어. 역시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였다. 저녁 호수와 잘 조화된 아름다운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아는 환상 그 자체였다. 1만석이라는 객석을 가득채운 관객들이 숨을 죽여 가며 집중하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맑게 갠 브레겐츠의 밤하늘에 울려 퍼지던 모짜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날 공연 무대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또 있다. 오페라 중 세명의 소년이 나오는 장면이다. 유아스러운 발상이지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던 연출가의 상상력이 즐거웠다. 우리는 그 장면을 ‘감자떡 충격’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게 됐다. 오페라 관람 전날에 들른 뮌헨의 ‘호프 브로이’에서 먹었던 식사 메뉴 탓이다. 아주 동그랗고 예쁜 모양의 빵이 나와 다들 반색하며 포크로 잘라 한입 입에 넣은 순간, 적응되지 않는 맛에 포크를 다시 놓아야 했던 충격을 경험했는데 ‘마술피리‘의 세 소년 모습이 꼭 그 감자떡과 똑같이 생겨 그들이 나오는 장면마다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었기 때문이다.

야외공연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불꽃놀이
다음 스케줄인 장크트마르가르텐으로 가는 도중 들른 인스부르크에선 마침 8월 1일부터 시작하는 이벤트인 가장 행진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중세시대의 복장과 분장을 하고 행진과 만찬 모습의 재현, 그리고 흥겨운 춤 등을 추면서 관객들과 즐기는 축제 덕분에 우리는 인스부르크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벤드나 가수들의 공연 역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음은 물론이다.


장크트마르가르텐 오페라 축제는 중세 이전부터 돌을 캐던, 1천여년의 역사를 지닌(이곳에서 채석된 돌로 비엔나의 유서 깊은 슈테판 성당을 건축 했다고 한다) 채석장의 폐허를 오페라 무대로 꾸며 공연하는 축제다. 올해 공연작품은 ‘라 보엠’. 내년에는 ‘아이다’를 공연한다는 안내를 축제현장 곳곳에 붙여놓고 있다. 이곳도 역시 브레겐츠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안내하던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참~ 특이 하신 분들”이라고 여러 번 말했던 곳이다.
그는 그동안 한 번도 이곳을 안내해본 적이 없다며 한국관광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아서인지 오지 않는 곳 이란 걸 여러 번 강조했다. 사실 우리가 찾아간 축제 현장에서 유럽 관광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동양인 여행객들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은 이색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장크트마르가르텐 오페라 축제를 보러가기 전 잠깐 들렸던 아이젠슈타트의 에스텔 하지 성도 (하이든이 30 여 년간 궁정 악장으로 활동 하였던) 관광코스에는 없는 곳이었지만 우리는 의미있는 답사지로 그곳을 선택해 하이든의 삶과 채취를 만났다. 나에게는 이 여정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평생토록 몇 번이나 연주하고 공부하는 첼로 콘체르토를 비롯한 수많은 곡을 작곡한 하이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니 새삼 감격스러웠다.

우리가 도착한 야외 오페라 극장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으로 달구어진 암석들이 한밤이 되어서도 식지 않아 오페라가 끝난 밤 12시가 넘어도 후끈후끈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 일행은 지정좌석이 있었지만, 객석 뒤편의 반듯하게 잘려진 바위에 자연스럽게 기대 앉아 푸치니의 선율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2막이 끝날 때 펼쳐진 불꽃놀이는 운집한 4000여 관중들에게 야외 공연장의 백미를 최대한 보여주는 멋있는 장면이었으며 축제의 느낌을 제대로 맛보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브레겐츠의 ‘마술피리’는 상상과 동화속의 이미지, 그리고 마치 ‘태양의 서커스‘를 보는듯한 판타지를 보여주는 입체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면 장크트마르가르텐의 ’라보엠‘은 전통적인 연출과 대칭의미가 조화를 이루는 무대장치 등으로 클래시컬한 느낌이 강한 공연이었다. 연주자인 나로서는 두 작품 모두 음악적인 비중보다는 보여주는 면에 조금 더 비중을 둔 듯한 느낌이어서 약간은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21세기는 보여지는 감각에 더 민감한 시대인 만큼 시대의 조류에 걸맞은 연출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훌륭한 공연이었다,

강렬한 유럽의 도시가 준 행복한 기행의 흔적
사실 오페라 공연도 좋았지만 뮌헨에서 들렀던 ‘알테 피나코테크’과 ‘노이에 피나코테크’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었던 훌륭한 미술작품들은 정말 깊은 감동으로 남아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인 ‘체스키 크롬노프’의 아름다운 풍광도 언제쯤이면 기억에서 희미해질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기행에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근무하는 전주 시립 교향악단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연주했다. 모짜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중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 ‘돈 죠반니’ 등의 세 오페라에서 유명한 아리아들을 발췌하여 연주하는 콘서트였다.
무대에서 연주를 하면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브레겐츠에서 느꼈던 감동을 오늘 이 콘서트 장에 와있는 청중들도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런 바람이다. 나는 그날 연주하면서 브레겐츠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평안과 위로를 얻었다.
여름의 끝자락으로 시간은 흘러왔지만 여전히 날씨는 계속 덥다. 기행을 다녀온 뒤 바닥을 친 체력 덕분에 한동안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이주일이 다 지나고 있는 이제야 겨우 일상에 익숙해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일상에 지치고 힘이 들 때면 나는 브레겐츠의 맑고 짙푸른 밤하늘에 반짝이던 북두칠성과 아름답게 울려 퍼지던 모짜르트의 아리아를 떠올릴 것이다.
다시 한 번 나에게 이런 기회가 허락된다면 또 다른 심신의 즐거움과 추억을 위해 주저하지 않고 떠나고 싶다. ‘마당’의 멋진 기획과 기행을 기대하며 이번 기행을 참으로 아름답고 즐겁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신 ‘마당’ 식구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김홍연 첼리스트 / 전주시향 수석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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