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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안적 삶에서 문화를 싹 틔우다
여행장소 175회 백제기행_도시문화기행 열 넷: 지리산 '산내'
작성자 이정우
기행일 2016-04-16



대안적 삶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산내마을'. 2016년 4월 백제기행은 봄과 함께 지리산 '산내마을'로 떠났다. 봄에 물들어 가는 지리산, 그 곳에서 문화로 소통하며 스스로 특별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산내 주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특별한 실험들을 직접 느껴본다.


지리산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삶의 터전이다. 최근에는 답답한 도시생활이 싫어서 떠나와 새 삶을 지리산에서 가꾸어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은 마을에서 '나'를 찾고, '나와 소통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대안의 삶을 생각하며 마을을 가꾸고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은 협동을 통해 삶을 일구어간다. 
지리산 산내마을에는 이들이 만든 다양한 단체들이 소통과 교류를 통해 특별한 지역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여성들이 중심이 된 <문화기획 달>에선 잡지를 만들고 여성을 위한 창작생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한생명>에서는 모든 생활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마을 경제와 자연을 순환시키는 일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고, <문화공간 토닥>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하는 음악회와 강좌를 열고 영화를 본다.
산내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야기. 우리는 그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기차타고 떠난 봄소풍은 그래서 더 설레었다.
4월 백제기행은 산내마을 아름다운 사람들과 지리산을 만났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한생명
올해 처음 타는 기차였다. 그래서인가 기차가 달리는 내내 절로 들뜬 마음이었다. 다행히 전주에서 남원간 철로는 길지 않았다. 20-30분 만에 도착한 남원역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지리산을 닮아 있었다.
버스로 시작된 남원 답사. 도착지는 산내마을이다. 남원군 산내면은 전국에서도 귀농귀촌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도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데에는 실상사 <작은 학교>와 공동체인 <한생명>의 역할이 크다. 산내마을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자급자족의 요람인 이곳 <한생명>이다. 한생명의 살림을 맡고 있는 한동훈 활동가님이 외지사람들을 맞아주었다. 동네 형처럼 친근한 인상의 한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귀농한지 얼마 안 되는 신참이다. 그는 낮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한생명 살림을 안내했다. 우리가 모인 느티나무 사랑방은 마을 주민들이 책도 보고 차도 마시는 일종의 공동체 공간이다. 다양한 강좌와 주민들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한생명 사람들이 소통을 이어가는 일종의 허브 공간이랄 수 있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전시까지 치러낸다니 그야말로 효율적인 복합 문화공간이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겐 남원과 지리산에 대한 각종 정보와 자료를 얻어 갈 수 있는 방문자센터 역할도 한다. '느티나무'의 그늘이 그만큼 넓은 셈이다.
한생명은 자연을 활용한 연계 사업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농업 공동체 건설이 활동의 목표다. 한생명은 2001년 실상사 귀농학교를 졸업한 귀농 주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우주 만물이 한 몸, 한 생명이라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기본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한 단체였다.
2002년에는 산내여성농업인센터를 개관했다. 농사일과 가사, 육아를 겸하는 여성 농업인들을 위한 기구였다. 자연스럽게 육아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산내들어린이집도 열었다. 활동해오는 동안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한생명의 활동은 여전히 건재하다.
느티나무 사랑방 바로 옆에는 느티나무 매장이 있다. 주민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05년에 개장한 친환경 매장이다. 실상사농장에서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과 생협 제품, 주민들이 생산한 유기농 식품들을 판매한다. 우리 밀로 만든 특별한 빵도 판매하고 있는데, 건강한 먹을거리에 목말라하는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아 갈수록 유통망이 넓어지고 있다.


그녀들의 작당소, 문화기획 달
산내마을에는 마을과 여성, 어린이, 청소년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돕는 <문화기획 달>이 있다. 2014년 설립된 <달>은 여성들이 운영주체다. 작업실이자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문화기획 달>의 공간은 금남의 장소다.
<달>의 이유진대표도 귀농인이다. 경기도에서 산내마을로 이사한 그는 농사를 짓는 일말고도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여성들의 글쓰기였다. 그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B급 잡지 『지글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리산에서 글 쓰는 여자들'의 줄임말인 『지글스』는 계간지로 통권 9호까지 발간됐다. 
이 책은 지리산 주변에 사는 모든 여성들의 표현의 장이다. 지리산 권역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들만이 글을 기고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여성이라면 누구나가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잡지. 평범하고 일상적인 글을 함께 나누어 볼 수 있는 잡지. 특별한 교정이나 검열도 없는 잡지. 이것이 『지글스』가 지향하는 세계다. 어찌 보면 헐렁하기 짝이 없는 B급 잡지로서의 틀을 기꺼이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제작진은 기획과 원고 작성, 원고 정리, 교정, 그리고 표지모델과 사진촬영까지 직접 진행 한다. 물론 제작비용도 스스로 마련한다. 가장 큰 후원자는 지역 여성들의 창작 활동을 응원하는 주민들과 독자들이다. 사실 잡지 한 권 만들어 내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이유진 대표는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터넷 잡지로 운영해볼 것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책이 주는 존재감과 가치를 바꿀 수 없어 종이 출판을 지켜가고 있는데,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며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나누는 보람이 그만큼 크다고 말한다.   
<달>이 운영하는 '살롱 드 마고'는 여성 전용 창작생활공간이다. 공간은 '여자는 자기만의 재산과, 방해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에서 그 의미를 찾았다. 이 공간엔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다녀갔다. 프랑스에 미술 유학을 갔던 여성은 이곳을 찾아 마을 주민과 아이들을 만나 프랑스어와 미술 수업을 했다. 주민들의 호감이 컸다. 입주자의 재능과 아이디어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교육, 워크숍 등을 공동으로 기획해 진행하는 이곳에서는 창작과 예술적인 일상을 꿈꾸는 지역 여성들이 자유롭고 안전한 여성의 삶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즐거운 문화 실험소, 지리산문화공간 토닥
오후에 찾은 곳은 '마을카페 토닥'이다. 산골마을의 카페는 아직 낯설다. 그러나 여느 도시의 카페와 비교해 손색없는 분위기의 토닥에는 커피와 차가 있고, 좋은 음악이 있다. 이 카페는 2012년에 설립된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이 운영하고 있다. 
'마을카페 토닥'은 공익적 비영리단체로 토닥이 진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다. 공간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시작한 이곳은 당초 마을의 호프집이었다. 상업적으로 흥미를 잃어가던 호프집을 인수해 토닥을 만들기까지에는 전국적으로 응원하는 후원자들의 힘이 컸다.
토닥에서는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로스팅한 100% 공정무역 유기농 커피원두로 내린 커피와 직접 만든 각종 차, 우리 농산물을 판매한다. 카페 책장엔 1,000여권의 만화책이 가득하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공간의 문턱을 낮춘 결과다. 토닥은 이미 열린 공간이 되어 아이들을 맡기거나 택배를 맡기고, 마을사람들의 물건을 교환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매주 화요일 저녁, 카페는 극장으로 바뀐다. 관객이 한 명이건 20명이건 상관없이 좋은 영화들과 다큐멘터리, 최신영화를 선정해 상영한다. 비정기적으로 음악회가 열고 마을신문, 글쓰기, 협동조합, 건축, 음식 등 주민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주제의 강좌도 연다.
'마을카페 토닥'은 지리산 자락 작은 시골 마을에 문화와 예술의 향기와 소통과 배움의 문화를 퍼트리는 공간인 셈이다. 강제 규정은 없지만 마을카페의 수익금은 다시 토닥의 사업을 위해 기부된다. 카페에서 수익을 낸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좀 더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공익 활동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기부된 수익금은 주로 청소년이나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기금, 지역의 교육문화사업에 재투자된다.

너른 들판 위 천년고찰, 실상사
산이 아닌 마을 한 가운데 절이 있다. 절을 휘감아 도는 물길은 실상사의 환경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치형의 둥근 해탈교를 지나면 실상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실상사에 들어가기 전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구름에 살짝 가리어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장관이다. 이즈음 실상사는 어수선하다. 문화재 발굴 때문이다.
문화유산해설사인 최명숙씨는 경내의 널찍한 공간의 특징 때문에 다른 절과는 다른 분위기라고 설명했지만 문화재 발굴만 없다면 이런 환경 역시 실상사만의 매력이 아닐까. 
신라의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는 실상사는 최초의 산문인 실상산파의 본사로서 우리나라 불교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풍수지리설에는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실상사 경내에는 <세월호 천일기도단>이 있다. 노란색 깃발이 꽂혀있는 이곳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 해 8월 만들어졌다. 4월 16일, 우리가 기행을 떠난 날은 세월호 2주기 되는 날, 답사자들은 천일기도단 앞에서 묵념을 올리거나 두 손을 모았다.
정기를 지키기 위해 철불이 흙 바닥위에 있는 실상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 세찬 바람이 불었다. 너른 들판위에 서있는 나무의 잎들이 떨어져 흩날리고 있었다. 잊어서는 안 될 일을 잊고 있는 우리를 향한 꾸짖음 같았다. 바람은 점점 더 세차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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