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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근대문화유산과 서해의 자연을 만나다
여행장소 192회 백제기행 도시기행 - 서천·장항
작성자 이정우
기행일 2018-02-24

서천은 아담하고 소박한 도시다. 낮은 건물들이 소복이 내려앉았고, 옛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민 건물들이 우리들을 정겹게 맞이한다. 빌딩숲이 늘어선 도시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 각기 다른 시간과 시대를 사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전경이다. 하지만 서천은 정겹다. 어릴 때 작은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바벨탑을 쌓으며 해를 가리며 서로 경쟁하듯 뻗어 올라가는 도시의 모습이 점차 낯설어지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는 물론 미래의 시간까지 조용하게,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서천. 슬픈 역사를 돌아보기도 하고, 잠시 멈춰보기도 하며 조화로운 미래를 그려보기도 한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다 놓쳐버린 느리고 소박한 감성. 서천은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뿌연 시야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지만 겨울철 끝자락에서 느끼는 따사로운 햇볕과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간, 그리고 공간과 자연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서천 만났다. 시간의 힘을 느끼고 싶을 때, 시간이 살아서 흐르는 곳 서천 속으로 떠나자.




문화의 태동, 문화예술창작공간
서천은 인구 약 6만 명의 행정구역상 군으로 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 아직 다양한 문화 시설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주를 치열한 문화의 현장이라고 한다면, 서천은 중심에서 좀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문화를 싹 틔우기 위한 진득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 현장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서천군 장항읍은 일제 강점기 설립된 장항제련소의 커다란 굴뚝이 거대한 바위산 가운데 솟아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2층 이상의 건물을 찾기 힘든 장항에서 제련소의 굴뚝은 어느 곳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자리한 서천의 랜드마크 같은 것이었다.
장항에선 근대 이후 일제수탈의 현장이었던 역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가 1936년에 건축된 미곡창고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실어갈 쌀을 저장하던 미곡창고는 일제 수탈의 아픔 속에서 나름의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독특한 건축기법과 역사 교육 자료로 인정받아 201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건물 내부는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상부에 목조 구조물로 만든 골격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 유난히 내부 콘크리트 기둥이 눈길을 끈다. 기둥에 커다란 숫자가 새겨져 있다. 소유주가 바뀔 때 등기부등본에서 등록된 연월일을 표기한 것인데, 이곳의 역사를 기록한 나이테 같은 흔적이다. 이후 2012년 공장미술제를 성공적으로 치루면서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마련 했다. 2013년 서천군이 나서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지금의 꼴을 갖추어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의 노력은 단지 공간의 재탄생을 의미하는 하드웨어 구축에서 끝나지 않았다. 서천의 유일한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창작공간은 지역을 먼저 생각하고 지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콘텐츠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고 많은 이야기를 발굴해내고 자료화 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렇게 축적된 아카이브를 소재로 인형극이나 전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으로 이어내고 있다. 지역의 현장과, 스토리텔링이 생산되고 소통되며 그 이야기와 밀접하게 엮여진 공간인 셈이다.
지역 주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해 다양한 체험 교육과 공연, 전시, 강좌도 다양하게 구성, 운영하고 있다. 공연을 비롯해 문화기획자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과 작곡가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까지 준비되어 있다. 전시는 또 어떠한가. 지역작가에게는 작품발표의 기회를 주고 지역민들에게는 문화향유의 기회를 늘리고자 기획되고 있다. 특히 지역작가 및  다양한 예술가들이 장항지역 이야기를 기반으로 전시, 워크숍을 통해 예술적 담론을 생산한다. 나아가 전국단위 작가공모지원전을 통해 여러 제약으로 발표되지 못했던 작품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매년 가을에는 연극과 콘서트, 전시, 체험이 어우러지는 복합예술축제인 '선셋페스타'를 개최하는데 서해의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으로 바다와 문화와 예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문화예술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만난다,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요즘 자주 하늘을 올려본다. 하늘이 참 가지런하고 예쁜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수시로 불어 닥치는 미세먼지 탓에 하늘이 가려지거나 목이 따끔거리는 날이 많았다. 주변 이웃나라의 문제로만 여겼던 대기환경오염이 우리에게도 일상의 문제로,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서천은 환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생태관광을 다녀오기에 최적의 장소다. 생태관광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생태적 특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을 배우고 관찰하며 즐기는 여행을 말한다.
또 하나의 작은 지구라 불리는 국립생태원을 보고 처음엔 그 크기와 규모에 놀랐다. 동물원도 아니고 식물원도 아니다. 동물과 식물이 한데 모여 생태계를 이루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생태원이라는 생소한 개념이다. 국립생태원을 거닐다 보면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면서도 건물자체도 자연의 일부인양 설계되어 그 어느 것과도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조화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국립생태원의 랜드마크인 에코리움은 물결무늬의 외관이 인상 깊다. 이곳은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 세계 5대 기후대의 생태계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각 기후의 온도와 습도부터 서식하는 동식물까지, 한 곳에서 다양한 지구의 기후대를 체험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넓은 부지에 펼쳐진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생생하게 체험 할 수 있는 국립생태원. 생태와 기술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이 모습이야말로 인간과 자연 동식물이 다함께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다 속 신비한 해양생물의 자원을 만날 수 있는 국립해양생물관은 서천이 자랑할 만한 또 하나의 보물이었다. 작디작은 무척추 동물에서부터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래에 이르기까지. 바다 속 다양한 생물들을 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해양박물관이다.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생태계를 다양성을 이해하고 해양생물자원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엄청난 규모의 '씨드뱅크'에 담긴 투명표본병에는 우리나라 해양생물의 표본이 수집 전시되고 있어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전시되고 있다. 이 두 공간은 산업경제적으로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서천의 독특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은 이 소중한 생태계를 어떻게 아끼고 지키며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이전과는 다른 마음과 생각의 문을 열어줬다.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비경. 남이 모르는 곳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기획전은 울릉도와 독도의 다이빙 포인트별 수중사진을 보여준다. 해양생물의 삶의 터전인 물 밑의 희귀하면서도 독특한 비경을 보여준다. 다이버들이 육성으로 전해주는 울릉도와 독도 바다 이야기는 작은 섬 아래 펼쳐지는 놀라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 지역을 생생하게 날 것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지금까지 거쳐 온 서천의 어느 곳보다도 생기 있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 장소는 서천 특화시장이다. 서해바다와 접해있는 서천은 다양하고 싱싱한 수산물이 풍부하여 전주나 군산 등 인근지역에서 즐겨 찾는 수산시장이 발달해 있다. 답사일행은 마지막 들른 서천시장에서 횟감을 비롯해 온갖 생선과 해산물 건어물, 젓갈 등이 풍성하게 펼쳐진 시장에서 가족들을 위한 저녁거리를 두 손 가득 장만하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충만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서천기행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매력을 느꼈다. 서천에서 문화의 꿈틀거림, 태동을 느꼈고 미래를 위해 지켜야할 소중한 자원인 자연을 지키고 친환경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봤다. 서천의 자연환경과 그 곳에 담겨있는 역사, 문화, 지역주민의 삶을 직접 마주했다. 작지만 옹골찬 서천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요들이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이 곳을 지켜내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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