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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모두 내 집터입니다
여행장소 165회 백제기행 - 도시문화기행 다섯 : 무주
작성자 관리자
기행일 2015-05-16

2년 전, 초여름 더위가 막 시작될 무렵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그림일기 :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를 보기 위해 부러 찾아 간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 있는 전시였기에 중요한 약속도 미루고 흥미롭게 감상하였다. 가끔은 꼭 보고 싶었던 전시를 '시간이 없어서' 혹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라는 이유로 놓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 전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EBS의 ‘지식채널e‘를 통해 건축가 정기용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인 전북에 약 30개에 달하는 공공 건축물을 설계한 이른바 '무주 프로젝트'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언젠가는 무주에서 정기용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보고자 마음먹었는데, 때마침 백제기행 '무주 프로젝트' 답사를 통해 고(故) 정기용 선생의 건축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여 망설임 없이 다녀왔"창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모두 내 집터입니다."다. 이번 기행에는 김병옥 기용건축소장의 깊이 있는 설명을 통해 정기용 선생의 건축 철학을 한층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무주에 도착해서 처음 방문한 곳은 적상면 주민자치센터였다. 김병옥 소장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적상면 주민자치센터가 다른 곳과 비교해서 특별히 달라 보이진 않았다. 무표정한 하얀색 건물인 적상면 주민자치센터 옥상에 강당시설 증축을 의뢰받은 정기용 선생은 ‘창(프레임)‘을 통해 건물에 새로운 옷을 입히고자 하였다. 건축가 정기용에게 창은 자신의 건축 철학을 담는 중요한 건축 요소 중 하나였다. 강당에서 옆으로 내려오는 통로에 보행자의 이동에 따라 높이가 달라지는 창을 만들어 주민들로 하여금 마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마치 영화필름처럼 생동감을 부여했다. 무주 프로젝트를 정리한 책 <감응의 건축>에서 정기용 선생은 “창으로 풍경이 들어온다는 것은 창이 풍경을 오려낸다”라고 표현했다. 오려내는 것은 건축 용어로 ’프레임의 법칙‘이라고 말하는데, 평범한 풍경인 산자락과 마을 앞 들녘도 프레임으로 보면 특별한 풍경으로 다가옴으로써 주민들에게 우리 마을이 영화의 배경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듣고 통로를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하니 신기하게도 그 의도가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적상면 주민자치센터를 나와 어죽으로 유명한 식당에 들러 허기를 달래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무주군청으로 향했다.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따가웠지만 무주군청의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의 초록빛은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정기용 선생은 무주군청을 리노베이션 하면서 뒷마당 주차장을 차가 아닌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주차장을 지하로 내리고 위쪽은 시원하게 비워진 마당으로 만들어 군민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마당의 높이를 구관 건물의 높이에 맞춰 반 지하 형태의 주차장을 만듦으로써 경제적인 건축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군청 앞 도로의 바닥재를 주먹돌로 교체하여 이 길을 지나가는 차량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하여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하는 등 철저히 ‘사람’ 중심의 건축을 실현하였다.

군청 외관에는 담쟁이를 식재하여 자연을 통해 사계절 다른 풍경을 건축물에 그려 놓았다. 고정된 그림이 아닌 계절에 따라 색감이 달라지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봄에는 밝은 연두색이 여름에는 짙은 녹색으로 채색이 되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겨울에는 하얀 백색의 도화지가 될 것이다.

리노베이션 당시 정기용 선생은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지역 청소년을 위한 2층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행정부서가 차지하고 있었다. 인터넷 카페를 드나들던 많은 초등학교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김병옥 소장은 무주가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점점 정기용 선생의 건축 취지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무주읍은 남대천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북쪽에는 군청이 자리 잡고 있고 남쪽에는 문예회관, 청소년수련원, 공설운동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작은 지역의 읍치고는 꽤 넓은 공간에 예술과 체육 시설들이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 위치한 공설운동장에 정기용 선생의'무주 프로젝트'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등나무 그늘이 있다. 당시 무주군수는 공설운동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해도 군민들이 잘 참석하지 않는 문제로 고민하다 군민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군수는 본부석 그늘에 앉아 햇볕을 피하는데, 우리는 땡볕에 앉아서 벌 받을 일 있나?"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이 말에 군수는 주민들을 위해 240여 그루의 등나무를 심어 스탠드에 자연스럽게 등나무 그늘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등나무가 1년 사이에 너무 많이 자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에 정기용 선생에게 등나무 집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고, 정기용 선생은 등나무 줄기와 비슷한 두께인 60mm 파이프 활용하여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등나무 그늘을 설계하였다. 지역의 작은 철공소와 협력하여 '등나무 집'이 완성되었고,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등나무는 등나무 집과 하나 되어 5월 초가 되면 초록 지붕에 등나무 꽃으로 물들어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등나무 운동장이 된 것이다. 여유만 있다면 등나무 그늘 아래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한숨 낮잠을 청해도 좋으련만 일정 때문에 서둘러 다음 장소를 이동하였다.

 


흔히 납골당이라고 말하는 무주 '추모의 집'은 기존 납골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정기용 선생은 추모의 집을 지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하나는 추모의 집이지만 건축물 보다는 자연의 일부가 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추모의 집이 삶의 종결인 죽음의 공간이 아닌 죽음을 경건하게 생각하는 명상적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주변의 인삼 밭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인삼 밭 모양의 지붕이 인상적인데 추모의 집이 아닌 갤러리나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죽음은 일반적으로 어둡고 그늘진 것으로 상징되지만, 그늘 속에서도 인삼과 같은 생명이 자라난다는 역설을 상징한 것이다.

천장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별다른 조명이 없이도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김병옥 소장은 이것이 지속가능한 건축이라고 말하고 있다. 추모의 집 내부에는 무주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창도 있고, 정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유리문도 있다. 추모의 집에 영혼들이 산책하는 공간을 만든 것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한 권리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정기용 선생의 배려였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몇몇 추모객들이 있어 사진 찍기가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기억에 남기고자 몇 컷 담아왔다.

 

그 외에 초기에 향토박물관 용도로 건축하였지만 지금은 카페 및 공방으로 이용되고 있어 조금 안타까웠던 '서창 갤러리 카페'를 거쳐, 작은 목욕탕으로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건축 당시 흙벽으로 지은 건축물을 몇 년 전 리모델링하여 개관한 '만나 작은 도서관'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특히,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의 작은 목욕탕은 몇 년 전 전라북도 우수정책인 '작은 시리즈'의 모태가 됐던 곳이다. 당시 전라북도는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면단위 도민들을 위해 작은 목욕탕, 작은 영화관, 작은 도서관 등을 개관하여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그 작은 시작이 여기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였다는 것을 이번 기행을 통해 처음 알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건축가 한 명의 철학과 실천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또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 되어 퍼져간다는 것이 놀랍다. 특히 이번 기행에 참여한 젊은 학생들이 훗날 제2, 제3의 정기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기행을 다녀와서 정기용 선생의 생전에 촬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다시 봤다. 생의 마지막 한 자락에서 정기용의 삶, 목소리, 건축 그리고 철학을 담은 영화.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보는 내내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발음마저 제대로 안 되지만 꿋꿋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절로 숙연해지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정기용 선생의 삶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유별났는지 알 수 있다. 무주의 건축물이 완공 후 의도와 다르게 개축된 모습을 보며 욕을 하는 장면은 속이 후련하고 차라리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건축계에서는 이단아로 치부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건축물을 이용할 사람들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소통하였으며 건축물에 담긴 철학을 설명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내가 누구인지,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건축가로서 정기용 선생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마다 엇갈리지만 그가 우리나라 ‘공공건축’의 싹을 틔웠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공공의 건물을 만들 때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편안함을 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소통하고 고민하며 '사람이 우선'인 낭만적인 생각을 했던 건축가, 평생 동안 건축을 천직으로 여기며 2만 여점의 도면, 스케치를 그렸지만 정작 자신의 집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가난한 건축가 정기용. 기행을 다녀온 후 무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이제'무주 리조트'나 '구천동'이 아니라 '건축가 정기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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