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도시는 그렇게 한 권의 크고 아름다운 책이 되었다 | |
여행장소 | 190회 백제기행 문화,출판,예술을 꿈꾸는 보금자리-파주 출판도시, 마포 문화비축기지 | |
작성자 | 도휘정 | |
기행일 | 2017-12-16 |
한 사람의 시간 위로, 또 한 사람의 시간이, 한 시대 위로, 또 한 시대가 쌓인다. 그래서 땅은 모두의 것이다.
'제190회 백제기행'이 찾아간 파주출판도시와 서울문화비축기지는 '공동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파주출판도시에는 울타리가 없고, 문화비축기지는 '시민공유지'를 표방한다. 땅은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땅에 선을 긋고 용도를 정하는 일이 신의 몫이 아니라면, 결국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철조망이 불안하게 시선을 가로막던 회색빛 도시 파주를 책의 도시로 변화시키고, 공영주차장으로만 알던 빈 석유탱크를 문화비축기지로 탈바꿈하는 것은 척박한 땅을 개간하는 일과 같았다. 땅을 알아보고, 돌을 골라내고, 기름지게 가꾸는 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단단하게 다져지고 있는 그 땅을 찾았다.
파주출판도시, 이름을 갖다
도시는 우연히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땅을 나누고 길을 다루는 일은 중요하다. 마지막 치장만을 중시한 도시는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다. 감동이 없다.
일산 신도시를 지나 한강이 보이는 이곳. 차창 밖으로 '개성, 평양'이라고 적힌 도로 안내 표지판이 서있는 곳. 군사 접경지역인 이곳. 파주는 출판도시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출판산업은 불편했고, 비효율적이었으며, 비경제적이었다. 이에 7~8명의 출판인들은 기획부터 편집, 제본, 유통까지 출판의 전 과정을 집약적이고 효율적으로 바꾸자는 데 뜻을 모았다.
처음부터 '맨 땅에 헤딩'하는 식이었다. 1989년 9월 출판문화산업단지 건설추진위원회 발기인 대회를 갖고 조합을 설립했다. 마침 김영삼 정부가 '아시아 정보중심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세우면서 출판과 영상을 산업의 한 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일대 1,586,784㎡(47만 평)에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갈대가 우거진 습지였던 폐천 부지. 1997년 이곳은 제1호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받는다.
원래 이곳은 군사보호구역이었다. 출판도시 뒷산인 심학산 지하 벙커에는 중대급 이상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출판도시 도시계획 단계에 참여했던 강동진 경성대 교수는 "정부로부터 출판업을 산업으로 인정받는 것, 심학산을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시키는 것, 그리고 땅에서 어떤 것을 지킬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도시 가운데로 흐르는 수로를 살리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환경 보존의 의미보다는 경관적으로 아까웠기 때문. 오늘날 이 갈대샛강은 파주출판도시가 생태환경도시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파주출판도시의 1단계 사업은 47만평 중 26만평을 출판도시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출판도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20여 만 권의 책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는 독서공간 지혜의숲을 비롯해 출판사와 책방, 북카페, 아트샵, 전시관, 갤러리, 박물관 등 현재 150여 개의 기업에 8,000명이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출판인들이 직접 준비하는 책놀이터 '어린이책잔치'와 국내 최대 규모의 책축제인 '파주 북소리', 인문학 강좌인 '출판도시 인문학당' 등 책과 관련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일 년 내내 이어진다.
내년 완공예정인 2단계 사업은 책과 영화의 도시로 조성하는 것. 2단계 조성이 완료되면 2만 여 명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경제효과도 3조 3천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공동성의 도시
출판도시는 책을 기획하고, 생산하고, 유통하는 산업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한 여느 산업단지와 다른 것은 도시를 만든 철학, 공동성에 있다.
출판도시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가운데 좋은 책을 만드는 좋은 공간'을 추구한다. 그 출발은 건축에 있다.
산업단지 지정으로 토지 매입비를 절약할 수 있었던 이들은 건축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이 땅에 건강한 출판문화와 건축문화'를 세우기 위해 입주자와 건축가들이 '위대한 계약서'를 맺고, 강력한 지침에 의해 건축을 시작했다. 그 결과 출판도시는 건물 하나하나 스토리가 있는 독특한 건축물로 채워진 하나의 건축전시장이 되었다.
출판도시는 건물을 배치하고 채우기에 앞서 비움을 먼저 설정했다. 이는 채우기를 우선해 온 보통의 도시 만들기와는 그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동성에 기초하여 울타리를 없애고 비어있는 공간을 두었다. 건물 높이도 4층을 넘지 않도록 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알바로 시자, SANNA(세지마 카즈요, 류에 니시자와)를 비롯해 국내외 40명의 건축가가 120개가 넘는 작품을 건축했다.
그렇게 출판도시는 한 권의 크고 아름다운 책이 되었다. 작가가 쓴 글이 독자의 몫이 되는 것처럼, 이곳은 그 때 그 때 찾는 사람에 따라 책의 도시가 되고, 건축의 도시가 되며, 생태환경의 도시가 된다.
강 교수는 "도시는 꿈틀꿈틀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이다.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생명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 개발보다는 최소 30년.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 되는, 한 세대를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출판도시가 첫 발을 뗀지 30여 년. 출판인들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시간이다. 출판산업은 느리지만 문화산업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으며, 출판도시는 출판문화공동체로 공동성을 실천하며 많은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석유에서 문화로, 석유비축기지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땅.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에 비밀스런 공간이 하나 있었다.
개발시대 산업유산인 석유비축기지. 서울시는 1973년 1차 석유파동 이후 1976년부터 78년까지 민수용 유류 저장시설을 건설했다. 축구장 22개 크기인 14만 제곱미터 대지 위에 지름 15~38미터, 높이 15미터인 탱크 다섯 개를 구축했다. 비축한 석유량은 6,907만 리터. 당시 서울 시민의 한 달 유류 소비량이었다. 이후 길 건너편에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위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건설되면서 2000년 12월 폐쇄되었다. 1급 보안시설로 분류되어 시민들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였던 바, 사람들은 이후로도 이곳을 공용주차장으로만 알고 있었다.
2013년 서울시가 '석유비축기지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며 비밀의 문이 열렸다. 2014년 8월 국제 현상 공모 당선작으로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이 선정됐으며, 2015년 말 '마포석유비축기지 재생 및 공원화 사업'에 착공했다. 2017년 3월에는 민관협치 모델을 적용한 '문화비축기지 협치위원회'가 발족했다. 폐산업시설이 시민들의 참여로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석유에서 문화로 바꾸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석유비축기지의 도면이 보관돼 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기존 다섯 개의 탱크는 공연장과 전시장 등으로, 탱크를 해체하며 나온 철판을 재활용해 신축한 한 개의 탱크는 커뮤니티 센터로, 임시주차장이었던 넓은 야외공간은 문화마당으로 탈바꿈되어 2017년 9월 1일 시민에 개방되었다.
비밀스런 공간이었던 이곳은 이제 사람들을 위한 열린 공간이 되었다. 거리예술마켓이 열리고, 밤도깨비 야시장, 마르쉐 장터가 수시로 열린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 축제로, 석유가 가득 차 있던 탱크는 문화를 비축하는 문화탱크가 되었다. 석유에서 문화로. 비밀기지가 시민들의 공동기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산업시설에서 산업유산으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눈부신 경제성장, 그리고 낡은 산업시설들이다.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혹은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는 공장과 창고들은 황폐해진 풍경으로 덩그러니 서있다.
만약 석유비축기지를 보존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탱크 특성을 살려 만든 원형극장 같은 멋진 야외무대도, 거대한 석유탱크에 들어가 보는 낯선 경험도 몰랐을 것이다. 만약 석유비축기지를 그대로 놔두었다면, 그것은 녹슬어가는 거대한 쇳덩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흉물이 되어 우리 삶을 짓눌렀을 것이다.
기존 탱크를 재생한 석유비축기지는 역사적 의미는 보전하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낡은 과거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일. 산업시설을 산업유산으로 가치를 높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미래의 쓰임새를 위해 원형 그대로를 보존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며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