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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청주, 예술로 그리다. 만들다. 짓다. |
여행장소 | 176회 백제기행_도시문화기행 열 다섯: 동부창고, 수암골, 소나무길프리마켓, 마동창작마을 | |
작성자 | 관리자 | |
기행일 | 2016-05-21 |
모든 새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헌 것이 된다. 옛 것이 된 헌 것은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게 한다. 5월 백제기행은 예술과 문화 활동의 중심지 충북 청주로 떠났다. 과거의 시간에 묶여 사라지지 않고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현장. 친근한 도시의 낡은 공간들이 우리를 만났다.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예술로 꾸며보는 청주. 쓸모없는 공간을 지우는 것만이 재생이 아닌 것을 알려준다.
3천 명이 넘는 근로자들의 땀방울이 배인 곳,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동부창고>로 재탄생 했다. 개·보수한 커뮤니티 플랫폼과 문화, 예술의 연습공간으로 생기를 되찾았다.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수암골>은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된 이후 벽화마을로 탈바꿈해 문화감성을 충전시킨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소나무길 프리마켓>은 자발적으로 문화예술을 꽃 피우는 공간이다. 폐교였지만 작가들의 예술 공간으로 만들어진 <마동창작마을>. 작업 공간과 함께 작품을 전시한 공간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다시 청주기행을 돌아보니 소박해서 더 아름다웠던 추억이다.
한 여름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쏟아지는 햇빛이 한낮 도심의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청주기행은 내심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왔던 일정이었다.
청주기행은 청주의 마을신문인 <청주마실>의 이재표 대표님이 안내를 해주셨다.
<동부창고>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들. 허름했으나 그 위용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은 1946년 건립된 옛 청주연초제조창이 있던 곳으로 솔, 라일락, 장미 등 내수용 담배를 연간 100억 개비 이상 생산했던 곳이다. 해외 50여개 국으로 수출까지 하는 청주를 대표하는 대규모 산업체였다. 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지만 담배공장의 현대화 계획에 따라 1999년 폐창됐고, 2004년 가동이 최종 중단됐다.
<동부창고>는 7개 동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가 둘러본 34동과 35동은 5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돼 지난해 10월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치고 개관했다. 덕분에 나무로 된 뼈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정교하게 짜인 나무들은 지나온 세월을 무색하게 할 만큼 무척이나 견고해 보였다.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비둘기는 이곳 구조가 익숙한지 제집 드나들 듯 노닐었다.
34동은 전시·공연·특강 등 협업프로젝트 및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커뮤티니 활동의 거점으로 꾸며진 곳이다. 콘서트와 공연, 각종 행사 등의 공간으로 이용 가능한 다목적홀은 고품격 공연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요리를 할 수 있는 푸드랩 공간도 눈에 띈다. 커피를 배울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도 갖췄다. 소규모 세미나와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랩실과 다양한 전시가 가능한 갤러리, 청주에서 유일한 목공예실도 마련됐다.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동아리 등 시민 누구에게나 개방된 35동은 현재 대관 업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수도권과 달리 공연연습이나 리허설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던 지역 예술인들에게 이곳은 더없이 고마운 공간이다.
모두들 공간 대여비를 듣고 깜짝 놀랐다. 부담 없는 가격에 최신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공간의 문턱을 낮춰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현재 38동 안에는 옛 연초제조창 운영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이 보관돼 있다. 당시의 근로현장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노동의 현장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공간들을 살펴보고, 그 공간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동부창고>. 문득 전주의 연초제조창이 생각났다. 1921년 문을 연 전주연초제조창. 이후 80여년간 전주의 도심 한 가운데를 지켰지만 10년 전 철거가 되어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금은 점차 사라지는 추억이 돼버렸다.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 일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유명한 <수암골>은 청주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그만큼 길이 가파르고 집이 옹기종기 붙어있다. 그 사이사이 골목들을 벽화로 가득 채운 이 곳, 허름한 담장의 꽃단장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수암골>은 한국전쟁 이후 만들어졌다. 울산 23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살던 피란민들이 청주로 이주하면서 생겨났다. 몇 년까지만 해도 쓸쓸한 달동네였다. 마을은 2007년 이후 달라졌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이홍원 작가를 비롯한 충북민족미술인협회 회원, 충북 민예총 전통미술 위원회 회원 작가,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의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렸다. 무채색의 골목은 각종 그림으로 꾸며진 산뜻한 골목으로 재탄생했다. 아기자기한, 동심이 살아나는 벽화마을로 거듭났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로 이용되면서부터 <수암골>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어 '제빵왕 김탁구'에서 마을 커피숍을 팔봉제빵집으로 이용하면서 드라마의 흥행과 더불어 큰 유명세를 얻게 됐다. <수암골>이 인기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영광의 재인', '캡틴', '출생의 비밀' 등의 드라마도 제작됐다.
이곳에선 벽화를 찾아다니는 즐거움도 있지만 곳곳에 자리한 연탄들도 꼭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이 연탄 아트의 주인공은 스트리트 아티스트 림민 작가. 그림을 그리고 거리에서 전시를 하는 그는 연탄을 소재로 기한 없는(?) 전시회를 하고 있다. 일기 쓰듯이 작업한 연탄은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이 스토리들은 <수암골>과 청주 곳곳에 있다.
사진작가들의 출사장소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각광받게 돼 어느 덧 청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때문에 카페, 음식점, 커피숍이 많이 생겨나고 건물들이 재건축 되고 있다. 실제 관광명소로 알려지고 나서 외지인이 많이 유입되었고, 원주민과 새로 들어온 주민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수암골>이 가진 아기자기한 모습이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소나무길 프리마켓
청주시 중앙동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청주의 중심상권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청주 외곽지역의 개발로 사람들의 발길이 급격히 줄었다. 상권 회복을 위해 약 400m 길이의 '차 없는 거리'를 조성했지만 불법 주차장으로 전락 했다. 주민들은 자율 조성된 기금으로 공실률이 높은 건물을 신탁 받아 저렴한 임대료로 임대에 나서 빈 점포를 줄였다. 2011년 11월에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8000만원을 조성해 도시재생신탁업무센터를 중앙동에 냈다. 이후 구도심 공동화로 한때 누구도 손댈 수 없이 추락하던 중앙동에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소나무길 프리마켓에 등록된 지역 공예작가들은 직접 만든 액세서리, 도자기, 인형, 천연비누 등을 전시·판매하는 예술시장 뿐만 아니라 생활용품과 골동품 등 각자의 판매품 사고팔고 기부할 수 있는 시민경매시장에 참여 할 수 있다. 방문객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주는 이 거리를 돌아보니 더이상 한적한 구도심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생기가 가득했다.
마동리는 청주에서도 풍경이 으뜸이라고 했다. 대청호를 둘러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었다. 도로 양옆에 우거진 가로수들은 초록빛 터널을 만들었다.
<마동창작마을>은 마음 단단히 먹고 출발해야 한다. 꼬부라진 산길과 익숙지 않은 들길은 운전이 미숙한 사람에겐 큰 곤혹이 될 수 있다. 우리 일행도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들길을 지나 <마동창작마을>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기사님의 훌륭한 운전솜씨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시골길을 가다보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 들어올 때의 긴장감을 한 번에 날려주는 평온한 마을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 창작마을은 화가, 조각가, 도예가, 붓 공예가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전공 학도들이 자신의 끼와 열정을 쏟아내며 똘똘 뭉쳐 살아가는 공간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예술작품들이 펼쳐져있다. 도시의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운동장에 꾸며진 아뜰리에, 작가의 집 정원안뜰, 텃밭 등에 맘대로 놓인 작품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꼭 맞는 자리에서 예술의 미를 발산하고 있다. 우릴 반갑게 맞이해주신 이홍원 화백은 먼 길 온다고 고생했다며 시원한 정자에서 황송하게도 수박까지 준비해주셨다.
반쯤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예술가들의 전시실이자 방문객을 위한 쉼터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넘치는 예술, 그 예술의 파도로 가득 채워지는 공간들이 오감으로 느껴졌다. 화이트 큐브에 전시되는 작품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교실로 쓰였던 장소가 이제는 예술 공간으로, 만남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옛 폐교의 정취도 맘껏 느끼고, 차 한 잔을 권하는 작가와 넉넉한 웃음을 나눌 수 있다.
<마동창작마을>은 본래 4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회서국민학교'였다. 대한민국 시골 학교에 가면 볼 수 있는 학교 앞 동상 '책 읽는 소녀'에 붙은 이끼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2004년 12월 폐교가 된 이후 창작쟁이들의 작업실이자 창작 문화공간 본거지로 탈바꿈했다. 지원을 하나도 받지 않고 조성되었다고 한다.
전원 속 동화마을, 바로 그곳이 <마동창작마을>이다. 마동리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을 통해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예술혼을 이어가고 있다.
청주 기행. 정말 멋진 사람들을 특별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잔잔한 여운과 추억이 맴도는 기행이었다. 나는 지금, 청주로 다시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