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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가을날, 음악으로 수다를 떠는 ‘수다맨’을 만나다
여행장소 169회 백제기행 도시문화기행 여덟: 전주
작성자 전은솔
기행일 2015-10-10

새로 바뀐 업무에 떠밀려 올 한해를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슬슬 일상에 지쳐가고 있던 차에 친구로부터 한 기행을 추천받았다. 오래간만에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에 전문해설가와 함께 한다고 하니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일단 듣는 것은 나에게 즐거움이만 국악공연이라는 정보는 맨 마지막에 흘려줬다. 상관은 없었다. 일단 나에게 어떤 공연이 재미있을까? 라는 선택권은 없었고 그렇지만 이번 기행에서 공연을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은근한 기대가 밀려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적인 여유가 넘쳐나는 취업준비생이었던 나는 골라듣는 재미가 있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곤 했다. 그땐 그랬지, 하며 소회를 하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낯선 이국의 기념품을 판매하는 전시장과 체험 부스가 여전히 늘어섰고 야외공연장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새로운 공기를 주입시키듯 윤중강 씨의 소개를 시작으로 어색하게 둘러앉아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나서 곧 보게 될 첫 번째 공연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고유의 전통음악이라는 견고하고 다소 무거운 영역 안에서 변화를 실현해 나가고 있는 젊은 예술인들의 도전과,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한 열정, 증명이라도 하듯 연출자를 직접 만나는 시간도 준비되어 질의응답시간도 마련해주었다.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닭들의 꿈 날다는 국악창작극이다. 공연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양계장을 탈출한, 날고 싶은 꿈을 찾아가는 엉뚱한 닭들의 비행기정도가 될 것이다.

고단한 일상을 버티게 하는 꿈이라는 것의 가치와 여전히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픔, 그 모든 상흔을 서로 보듬는 따뜻한 존재로서의 이웃에 대한 이야기들도 촘촘히 번졌다.

암전과 함께 아이들의 웅성웅성 소리가 관람석을 메웠는데 마치 꼬꼬댁 삐약삐약 하는 소리가 가득 찬 듯 했다. 적은 예산과 5명의 출연진으로 여러 장면을 재현하기 위하여 수만 번 모았을 고민이 느껴지는 꽉 찬 무대는 응원하기에 충분했다.

배우들의 연기와 합이 딱딱 맞는 노래와 몸짓, 무엇보다 평소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우리 소리의 힘찬 기운에 박수를 쳤다가 얼쑤하는 자연스러운 추임새를 넣으면서 공연을 봤다.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한옥마을에 있는 소담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행의 주제였던 수동적인 평론가의 수다가 있는에서 주체적인 평론가와 수다를 떠는으로 패기 넘치게 제목까지 고쳐 잡았다.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와 대학생, 부부 교사, 종교인 등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기행은 진지하고 자유롭게 공연에 대한 소감과 의견에 대한 이야기를 교류했다.


나의 아버지는 취미생활로 처음에 판소리로 시작해서 현재는 가야금 병창을 배우고 계시니 국악에 심취한 세월은 10년이 훌쩍 넘는다. 초등학교 때는 연습하시는 걸 하도 반복해서 들었더니 사철가 정도는 그 의미는 몰라도 가사를 흥얼흥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국악은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음악이었다. 사이는 좋은 편이라 공연장에는 가족이 함께 다니곤 했으나 전통 판소리에 대한 아버지의 자부심은 종종 낯선 것에 대한 비난과 조롱으로 이어졌고 난 거기에 대한 반항감이 있어 공연 후 소감을 나누다 보면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리가 나에게 깊은 해방감을 주었다. 의견에 대한 비난보다는 다양한 의견에 대한 수렴과 이해에 도움을 보태기 위한 전문가의견, 나와는 또 다른 다른 사람의 감상평을 듣다보니 다시 한 번 공연이 상기되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오후에 듣게 될 더블빌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도 함께 이어졌다. 먼저 12현 가야금과 25현 가야금의 등장, 한국, 일본과 중국, 현악기의 특징의 차이, 아시아의 다양한 현악기 등 평상시 접하기 어려웠던 음악적 지식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신 덕분에 공연에 대한 사전이해를 도왔다. ‘미궁의 작곡가이자 연주가로 가장 많이 알려진 황병기 가야금 명창의 침향무에 대한 상세한 배경설명과 근황까지 듣고 공연이 이어지니 훨씬 연결이 쉬웠다.


사토 마사히코와 프라딥 라트나야케의 협연은 즉흥적이지만 유려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숲속의 나비가 날아다니듯 조명이 한들한들 돌아다니고, 여성공연자의 음성이 몽환적이고 강인하게 곡을 채웠다.


새로운 음악을 듣는다는 것만으로 하루여행은 지쳐있던 나에게 새로운 동력을 불어 넣어줬고,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은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데 익숙한 곳이지만 오늘처럼 공연이나 음악을 듣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갑자기 모여앉아 생각을 나눈다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는 점은 매우 신선한 체험이었다./전은솔(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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